'소아의료 개선대책' 4개월 지났지만…의사는 탈출, 아동병원은 진료단축

정부 2월 대책 발표에도
의료계 전반 불신 거세

지난 2월 정부가 소아진료 사각지대 해소 등을 위해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는 와중에도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탈출'을 선언했고, 아동병원들도 진료 단축 등이 불가피하다며 근본적인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보다 속도감 있게 개선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미흡한 점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는 게 의료 현장의 목소리다.

국내 첫 아동전문병원인 서울 용산구 소재 소화병원이 근무 의사 부족으로 6월부터 휴일 진료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부가 앞서 내놓은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은 크게 ▲중증소아 의료체계 확충 ▲소아진료 사각지대 해소 ▲적정 보상 등을 통한 소아진료 인력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력 부족 문제를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아동병원협회가 전국 아동병원 108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에 참여한 60여곳의 아동병원 중 90%는 의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답했다.

특히 향후 평일 야간 및 휴일 진료시간 감축 계획 여부에 대해서는 71.4%가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진료시간 감축 이유로는 진료의사 수 감소(34.2%)가 가장 많았고, 근무직원 이탈(32.9%), 응급 중증 환자 전원 어려움(24.1%) 등이 뒤를 이었다.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은 "소아 의료 현장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더욱 악화하고 있다"면서 "부족한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정부는 하드웨어 확대 정책에만 집중하고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첫 아동전문병원이었던 서울 용산구 소화병원은 의사가 부족해 이달부터 휴일 진료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지난 11일 열린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학술대회'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참석해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본격적으로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에 이어 지난 11일 서울 한 호텔에서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학술대회에는 현장에만 소아청소년과 의사 600명이 몰려 고지혈증, 보툴리눔 톡신(보톡스), 비만, 당뇨, 하지정맥류 등 진료를 위한 노하우를 익혔다.

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앞서 "활동 회원 3500여명 가운데 90%가량인 3100여명이 타 진료 전환을 원하고 있거나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회원들의 요구에 따라 교육·훈련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임현택 회장은 학술대회에서 "그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수도 없이 호소했지만, 정부는 우리가 소아청소년과 운영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책을 운영했다"며 "아이들을 좋아해 소아청소년과를 택했지만 이런 상태로는 더는 진료할 수 없겠다 싶어 너무도 씁쓸한 자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정부가 발표한 대책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폐지 또는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소아청소년 야간·휴일 진료를 담당하는 '달빛어린이병원' 확대를 내세웠는데, 아동병원협회는 실효성이 없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이홍준 협회 정책이사는 "10여년 동안 구체적 평가가 없었고 입원 등 배후진료 시스템이 미비한 데다 지역 격차도 심하다"며 "생활 거주 지역 내에서 야간·휴일 진료를 하고 싶은 국민 수요와 동떨어진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협회는 달빛어린이병원 폐지와 전면적인 수가 재조정을 통해 지역별 인구에 비례한 1차·2차·3차 소아의료기관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중장기적인 소아청소년과 인적 자원 충원 계획과 소아청소년 의료 현장을 떠난 의사들을 돌아오게 할 제도 개선책 마련도 제안했다.

바이오헬스부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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