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기자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해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면서 발생한다.[사진제공=NASA]
올해 여름 ‘슈퍼 엘니뇨’가 전 세계를 강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농산물 관련 투자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상기후로 곡물 등의 작황이 좋지 않을 경우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ODEX 3대 농산물 ETF'(상장지수펀드)는 이달 들어 전일까지 1만1200원에서 1만1630원으로 3.8% 넘게 올랐다. 이 ETF는 시카고거래소에 상장된 옥수수 선물, 콩 선물, 밀 선물 가격과 연동해 가격 변동률을 보이는 ETF 상품이다. 이 ETF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량 인플레이션이 초래되자 장중 1만7000원 선까지 뛰었지만, 러시아의 곡물 공급 재개와 에너지 비용 감소 등으로 올해 들어 1만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슈퍼 엘리뇨의 발생 확률이 80%를 상회하자 곡물 작황 우려를 반영해 가격이 오름세로 전환됐다. 같은 기간 'KODEX 콩 선물 ETF'는 4% 넘게 상승했고,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 ETF’ 2.7%, ‘메리츠 대표 농산물 선물 상장지수증권(ETN)’ 3.4% 올랐다.
엘니뇨란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 대비 0.5도 높은 상황이 5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해수면 온도가 0.5도 낮아지는 것을 말하는 라니냐와 반대되는 경우다. 슈퍼 엘니뇨라는 엘니뇨 상태보다 해수면 온도가 2도 이상 높은 상황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하는데, 미국 해양대기청은 올여름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엘니뇨가 시작되면 미국 북부와 호주, 인도, 아프리카 남부 지역은 건조한 상태가 이어지게 되고, 미국 남부와 멕시코, 중앙아시아 지역은 강우량이 증가하게 된다.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이상기후가 나타난 것인데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호주와 동남아, 남미 등은 특히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인도와 중국, 동남아의 경우 올해 초 가뭄을 겪었으며, 브라질과 호주 역시 가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니뇨 발생 확률 증가에 따른 곡물 가격 재상승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지난달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재배되는 옥수수와 대두 경우 가뭄으로 작황 우수등급 비율이 낮게 산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엘니뇨가 농산물 가격 변동성을 자극할 순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모든 농산물의 수확을 어렵게 만들진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추가적인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농산물은 원당과 커피, 코코아 등 소프트 원자재로 알려진 것이다. 곡물의 경우 장기적으로는 작황이 개선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라니냐 영향권에 놓여 가뭄에 고통받던 아르헨티나와 미국 중남부 지역에 강수량이 예상되면서 소맥, 옥수수, 대두 등의 곡물 공급 정상화 시작되고 있다”며 “라니냐 후퇴로 북반구에 강추위도 약해지면서 난방 수요가 위축될 경우 석탄 등 에너지 가격이 낮아져 추가적인 곡물 가격 하락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리뇨 영향권인 인도와 브라질 등은 원당, 커피 주요 생산 지역이다. 세계 1위 커피, 원당 생산국인 브라질은 파종 시기인 9~12월 엘니뇨 발 불볕더위에 작황이 좋지 않을 것을 보인다. 인도는 전 세계 2대 원당 생산·수출을 담당하고 있는데, 파종 기간인 8월과 9월 가뭄이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수확이 시작되는 11월 원당 공급 전망치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진영 연구원은 “커피는 브라질, 베트남,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순으로 생산량이 많은데 이들 모두 엘니뇨 발 공급 차질 가능성이 큰 지역”이라며 “과거 라니냐에서 엘니뇨로 전환되는 국면에선 옥수수, 대두, 소맥 등보다는 소프트 원자재의 성과가 두드러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호주도 가뭄 영향권에 놓여 소맥 공급이 줄겠지만, 전체 생산량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원당을 원료로 하는 설탕 가격은 일찍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런던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톤(t)당 설탕 가격은 679달러로 연초 이후 22% 급등한 상태다.
투자를 고려한다면 ETF나 상장지수증권(ETN)에 어떤 상품이 얼마의 비중으로 담겨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국내 상장된 ETN과 ETF 상품들은 대부분 옥수수, 대두, 콩 등에 투자하는 비중이 크다. 'TIGER 농산물선물Enhanced(H) ETF’이 밀, 옥수수, 대두, 설탕 종목에 골고루 투자하고 있지만, 원당 값 상승에 따른 수혜를 오롯이 누리기는 어렵다. 해외 ETF 중에선 설탕 가격 상승에 투자하는 ‘Teucrium Sugar Fund(CANE)'의 있다. 커피 투자 상품으로는 ‘아이패스시리즈 B Bloomberg Coffee ETN’ 을 꼽을 수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원당과 커피 가격 상승으로 원재료 부담이 커질 종목에 대한 투자를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희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라니냐 해소로 투입 곡물가 부담은 완화되겠지만 설탕 원재료 비중이 높은 가공, 외식 업체들의 설탕값 부담이 가시화되고 있어 음식료 업체들의 원재료 부담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