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기자
집권여당 지도부가 '현역 의원 가뭄 현상'을 겪고있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국민의힘 최고위원 보궐선거 최종 등록 후보자 3명은 모두 국회의원 당선 이력이 없는 '0선'의 원외 소속이다. 최소 재선, 높게는 7선의 중진이 최고위원직을 맡던 과거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최고위원 대부분이 총선 공천권을 거머쥐면서 '공천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최고위원이 원내에서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5일 열리는 국민의힘 최고위원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는 김가람, 이종배, 천강정 후보가 참가한다. 모두 원외 인사이면서,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0선'들이다. 태영호 의원의 최고위원 사퇴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는 당초 영남 외 지역에 기반을 둔 재선 이상 의원들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이용호, 김석기, 송언석 의원 등이다. 하지만 후보자 등록이 마감된 지난달 30일까지 단 한 명의 의원도 출사표를 던지지 않았다.
최고위원은 당대표와 함께 당무 전반에 대한 심의·의결을 맡는 당 지도부로, 재선 이상급이 주로 맡아왔다. 전당대회 후보 중 1위가 당 대표(대표최고위원)를, 2위부터 최고위원을 맡는 '집단 지도체제'였던 새누리당 시절에는 가장 선수가 낮은 최고위원이 재선, 높게는 7선(서청원 의원)까지 있었다.
특히 최고위원회는 국회의원 총선거 공천을 최종 의결하는 기구인 만큼 공천에 대한 영향력이 막대하다. 국민의힘 당헌 32조는 최고위의 기능 중 하나로 '국회의원 후보자 등 공직후보자의 의결'을 적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3·8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 후보가 13명, 청년최고위원 후보로 11명이 등록하는 등 인기몰이를 했다.
실제로 새누리당부터 21대 총선 전 미래통합당까지 선출직 최고위원 중 대부분은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았다. 총 19명 중 공천에서 탈락한 최고위원은 4명으로, 막말 파문과 선거구 변동 요인 등이 작용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급변했다. 최고위원직을 맡으면 오히려 총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 관계자는 "최고위원이 공천을 담보처럼 가져간다는 것은 옛날 얘기"라며 "이번 총선의 경우 오히려 지도부가 솔선수범해서 (총선에서) 희생을 할 가능성이 있다. 지도부라는 점이 오히려 출마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 지도부가 총선 승리를 위해 '불출마' 결의를 하는 경우의 수가 있다는 의미다.
이같은 당내 분위기는 잇따른 설화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 최고위원이 '당원권 정지 1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은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달 10일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1년의 징계를 받으면서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 공천 신청이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최고위가 '무늬만 지도부'로 전락한 점이 최고위원 기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 3.8전당대회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 등을 겪으면서 당 최고위는 친윤계 일색으로 구성되면서 당정관계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용호 의원은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에서 "최고위원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데 거기에 걸맞냐, 들러리가 아니냐. 실제로 중요한 핵심 의제 결정은 다른 데서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며 "당내에서도 5인회가 있다,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김기현 대표와 함께 비공개 전략회의에 참석하는 이철규 사무총장,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등을 5인회 멤버로 추측했다.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5인회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5인회는 '식물 지도부'로 전락한 당 최고위의 현재 주소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이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지난달 30일 방송에서 한 '5인회' 발언을 취소한다'"면서도 "최고위원회가 제 역할과 위상을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언하다가 튀어나온 잘못된 어휘"라고 수습했다.
다만 당 일각에선 최고위 위상이 낮아진 것이 단일 지도체제의 구조적인 한계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당대표를 최고위원과 따로 선출하고 대표를 중심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단일 지도체제'에서는 중진보다는 초선, 원외인사의 출마 및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2016년 총선 이후 집단에서 단일 지도체제로 돌아왔다. 한 재선의원은 "집단 지도체제일 때에는 '센 사람'들이 (최고위원에) 앉았는데, 단일 지도체제로 바뀐 뒤에는 중량감 있는 사람들은 최고위원을 아예 안 나간다"며 "단일 지도체제는 당대표 중심이고 나머지의 (역할은)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외 인사가 지도부로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당선부터라는 해석도 있다.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에서 이 전 대표는 4~5선의 중진급 인사들을 제치고 보수정당 최초로 '0선 원외'로 당대표로 뽑혔다. 당시 최고위원도 초선 2명(조수진·배현진 의원), 원외 2명(김재원·정미경 의원)으로 과거 대비 중량감이 낮아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전 대표 때문에 생긴 바람과 비슷하다"며 "원외인데도 여론조사 1등이 꾸준히 나오니 당시 원외가 (최고위원직에) 많이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9일 최고위원 보궐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조수진 의원 1명을 제외한 3명의 선출직 최고위원은 원외 인사로 구성되면서 중량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달 31일 YTN 라디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아직도 여소야대 상황에 있고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정하고 온갖 입법적 횡포를 부리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야당에 대해 전투력을 갖춰야 하는데 집권당의 최고위가 약체로 구성이 되면 그런 면에서 굉장히 문제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선출직 최고위원은 3선 의원 2명(정청래·서영교), 재선 의원 1명(박찬대), 초선 의원 2명(고민정·장경태)으로 모두 원내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