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기자
"피고인은 자신도 지적장애인이다. 그런데도 자기보다 불우한 피해자에 대한 연민과 우정으로 그를 곁에서 성심껏 돌본 것으로 판단된다."
함께 살던 지적장애인 B씨(사망 당시 25세·여)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형사법정에 선 지적장애인 A씨(26·여)에게 올해 초 1심 재판부가 한 말이다.
2021년 5월31일 오전 11시30분. 약속이 있던 A씨는 B씨를 집에 혼자 두고 외출했다. A씨는 B씨보다 상대적으로 지능지수가 높긴 하지만, 본인도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B씨는 2019년부터 정신건강 질환으로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었고, 119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날 아침에도 B씨가 잠을 자다가 거품을 물었기에, A씨는 B씨의 팔을 잡아 올려 상태를 체크하고 숨을 쉬는지 확인한 뒤 집을 나섰다. 그는 B씨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
3시간 뒤 A씨가 귀가하니, B씨는 입 주변에 피가 묻은 채 호흡이 멈춰 있었다. A씨는 119에 신고하고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상황실 지시에 따라 심폐소생술(CPR)을 했지만, B씨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급성 약물중독이었다.
검찰은 "B씨의 건강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방치하고 외출해 숨지게 했다"며 A씨를 재판에 넘겼다. A씨 측은 "그가 심각한 상태인 줄 몰랐고, 사망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가 위중한 상태임을 알고서도 숨지도록 내버려 둘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한 판단이었다.
B씨는 어릴 때 할머니 손에 자랐고, 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에 보호시설과 병원을 전전했다. 역시 지적장애인이던 A씨는 오갈 데 없던 B씨에게 "나랑 같이 살자"고 손을 내밀었다. B씨의 동생과 고등학교 특수반 때부터 알던 친구였고, 친구의 언니인 B씨와도 친하게 지낸 인연이었다. A씨는 2021년부터 인천 부평구에 오피스텔을 구해 B씨와 둘이 생활했다.
1심 재판부는 "평소 피고인은 피해자가 병원에 갈 때마다 동행했고, 외출할 때는 휴대전화 위치공유를 켜고 피해자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며 "피고인은 진심으로 피해자를 걱정하면서 피해자가 아플 때마다 119 신고를 하거나 병원에 데려가는 등 노력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했고, 서울고법 형사6-1부(재판장 원종찬 부장판사)는 최근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숨진 B씨도 자신의 상태가 위급하면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이전에도 피해자는 직접 119 신고를 한 적이 있다"며 "A씨가 외출한 뒤 스스로 다량의 약을 먹고서 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