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남성 우선 ‘제사주재자’, 조리에 부합하지 않아'… 15년 만에 판례 변경

전원합의체 "남성 상속인, 제사주재자로 우선… 성별 차별에 해당"

제사주재자를 반드시 아들로 지정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판단이 나오면서, 15년 만에 판례가 변경됐다. 앞서 전합은 2008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적자와 서자의 구분 없이 망인의 장남이나 장손자 등 아들에게 제사주재자의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제사주재자 지위 인정 여부 등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사진제공=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11일 A씨가 청구한 유해인도 소송에서 "아들에게 제사주재자의 우선순위가 있다"는 취지의 원심 판단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1993년 B씨와 결혼해 2명의 딸을 낳았는데, B씨는 2006년에 다른 여성에게서 혼외자(아들)를 얻었다. 이후 2017년 B씨가 사망하자 혼외자의 생모는 배우자 및 다른 딸들과 합의하지 않고 고인의 유해를 경기도 파주의 추모 공원 납골당에 봉안했다.

이에 A씨와 딸들은 "B씨의 유해를 돌려달라"며 생모와 추모 공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의 소유권은 민법상 제사주재자에게 있다.

하지만 법원은 1·2심 모두 A씨와 딸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심은 ""망인의 공동상속인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적서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가,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장녀가 재사 주재자가 된다"는 15년 전 전합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1·2심은 "사회가 변하고 있어 적장자가 우선적으로 제사를 승계해야 한다는 관습은 상속인들의 자율적인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적서간 차별을 두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합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에 관한 종전 전합 판결의 법리는 더 이상 조리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워 유지될 수 없다고 봤다.

전합은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이를 정당화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현대사회의 제사에서 부계혈족인 남성 중심의 가계 계승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하고 망인에 대한 경애와 추모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으므로, 남성 상속인이 여성 상속인에 비해 제사주재자로 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제사주재자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우선하는 것이 보존해야 할 전통이라거나 헌법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전합은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제사주재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중 성별과 적자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촌수가 가장 가까운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한다’는 새로운 법리를 내놨다.

이에 따라 전합은 새로운 법리를 적용해 A씨가 청구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B씨의 직계비속 중 남녀를 불문하고 최근친의 연장자가 제사주재자로 우선하되, 그 사람이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사유가 있는지를 심리하라는 취지다.

사회부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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