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비지떡만 먹으라는 교육부

서울 유명 사립대학의 발전기금 명단에는 C교수 이름이 500만원 이상 기부자로 올라 있다. 지난해 대기업 사외이사를 맡고 받은 급여 중 20%를 발전기금으로 냈다. 자발적 기부는 아니었다. 이 대학은 교수가 사외이사 등 외부 겸직 소득의 20% 기부에 동의해야 겸직 승인서에 도장을 찍어 준다. 발전기금 명단의 교수 200여명 중 상당수가 비슷한 경우라고 한다. 도장값을 받는 셈이지만 등록금 동결로 학교 재정이 워낙 나쁘니 이해한다고 C교수는 말했다.

이 학교뿐 아니다. 서울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이 교수 외부 겸직 소득의 일부를 기부금으로 걷는다. 기업이 돈이 모자란다고 직원 부수입에서 운영자금을 떼어가는 꼴이다.

올 봄 정치인들까지 생색내기 밥숟가락을 얹었던 ‘1000원 학식’ 참여 대학 상당수는 규모를 늘리거나 오래 지속할 수는 없는 사정이라고 한숨을 쉰다. 끼니당 1500원 정도인 학교 부담금을 계속 낼 여력이 없다는 이유다.

모두 15년째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생긴 일이다. 대학 등록금 동결이 시작된 2009년 이후 진보든 보수든 모든 정권이 등록금을 억눌렀다. 2010년 개정 고등교육법은 아예 등록금 인상률을 직전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 이하로 못박았다. 법대로 올려도 불이익을 준다. 등록금을 한 푼이라도 올리면 정부 재정 지원 사업에 끼워주지 않고, 국가장학금도 배제한다. 올해 전국 모든 대학 중 찔끔이나마 등록금을 인상한 강심장은 11%이다. 나머지 89%는 정부의 목조르기에 당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정부가 가격을 억누르고 있는 대표 산업이 의료다. 정부는 1977년 의료보험 도입시부터 병원이 받을 의료수가를 적자 편성하고 있다. 그나마 병원은 수가 규제의 틈을 찾아 적자를 벌충한다. 고객(환자)을 최대한 받아서 매출을 늘리고(박리다매), 비싼 1인실 등 비보험 항목을 추가한다(객단가 인상).

대학이 받는 등록금 규제는 훨씬 강력해서 빠져나갈 틈이 없다. 의료계처럼 박리다매나 객단가 인상으로 수입을 늘리는 건 꿈도 못 꾼다. 고객 수(입학정원)는 교육부가 관리하고, 교육기관 특성상 비등록금 추가 청구란 있을 수 없다. 대학의 투자 여력이 바닥나니 학생들은 비 새는 실험실의 고물상 장비로 콩나물시루 교육을 받게 됐다. 교수들은 충실한 강의 준비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최고경영자 과정 등 수익성 강좌에 동원된다.

어떤 상품은 가격 통제가 나라 전체에 플러스가 되기도 한다.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하면 한전은 부실해지지만 국가 제조업 경쟁력은 올라간다. 대학 등록금 통제는 아니다. 대학도 부실해지고 국가 인재 경쟁력도 떨어진다. 싼 게 비지떡이라서 그렇다. 대학 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닌데, 정부는 등록금 동결로 대학생에게 15년째 비지떡만 의무적으로 먹게 한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최소한 내년까지 등록금 논의는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 내년 국회의원 선거는 조용히 지나간다. 피해는 비지떡을 계속 먹어야 하는 학생들이 본다. 이주호 장관은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한 2010년에도 교육부장관이었다. 이 제도의 도입, 법제화부터 현재 실태와 후유증까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눈앞 득표만 챙기는 정치인들이 끌고 온 등록금 포퓰리즘을 결자해지할 최적임자다.

사회부 이동혁 기자 do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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