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선기자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자리를 놓고 여야 간 기 싸움이 치열하다. 양측 모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을 바꾸고 있다.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몫으로 추천한 최민희 방통위 상임위원 후보자의 임명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갔다. 여당인 국민의 힘은 방통위 설치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방통위 설치법을 보면 대통령은 위원장과 방통위원 1인 등 2인을 지명한다. 나머지 3인은 여당( 1인)과 야당(2인)이 나눠 추천한다. 3대2로 힘의 균형을 맞추자는 취지다.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지난 대선으로 여야가 바꿨다는 점이다. 국민의 힘이 야당 시절 추천한 위원이 물러나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인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힘은 최 전 의원이 임명되면 여당 추천 1인, 야당 추천 4명으로 법 취지에 어긋나는 구성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민주당은 전임이 야당 추천 몫인 만큼 후임도 야당 몫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예고된 신경전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양당의 입장은 그때그때 달랐다. 우리 당이 유리한 쪽으로 논리를 바꿔왔다. 2014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김재홍 전 위원을 추천했다. 민주당은 정권이 바뀌어 2017년 '여당'이 됐지만, 김 전 위원의 후임으로 허욱 전 위원을 다시 추천했다. '야당'(국민의힘)의 추천 몫이었던 안형환 전 위원은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김석진 전 위원의 후임이었다. 반대 사례도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2017년 '야당'(국민의당) 추천으로 자리에 오른 표철수 전 위원은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민주당)의 몫으로 추천된 고삼석 전 위원의 후임이었다. 일률적인 규칙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상황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최 후보가 상임위원 자리에 오르면 당장 인적 구성이 민주당으로 쏠린다. 다만 이 인적 구성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윤 대통령이 지난 5일 퇴임한 김창룡 전 위원 후임을 지명할 예정이다. 또한 7, 8월 한상혁 위원장(대통령 지명)과 김효재(야당 추천), 김현 위원(여당 추천)의 임기가 끝난다. 이후 방통위원 구성은 다시 여야 3대2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권력·사정기관부터 정치권까지 총동원해 '방통위 털기'에 나서면서 방통위는 3~4개월 동안 '개점 휴업' 상태다. 내부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지난 9월부터 감사원 감사, 세 차례 압수수색, 국과장 인사의 구속, 국무조정실 감찰, 위원장 구속 영장 청구 등이 이어졌다. 2020년 TV조선 재승인 당시 방통위가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낮게 수정하도록 개입했다는 의혹이 방통위를 뒤흔들고 있다.
미디어 업계는 방통위 상임위원 인선 작업 속도도 더딜 것으로 보고 있다. 상임위원 임명 권한은 대통령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최 전 의원에 대한 방통위원 철회 요구를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한다면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창룡 전 위원 후임 인선 작업도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미디어 업계 관계자는 "한상혁 위원장의 거취가 결정될 때까지 상임위원 인선은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조직을 빠르게 재정비하지 않으면 방통위 분위기는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