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기자
코로나19 사태 직후 늘어났던 PC판매가 부진하다. 반도체 업계 호된 겨울을 지나고 있다. 컴퓨터 수요가 줄다보니 CPU, 메모리 등 반도체 기업 영업실적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칩의 등장은 늘 잠재적 구매자들의 가슴을 뛰게하는 요인이다.
유난히도 추운 '반도체 겨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느때 보다도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하다.
지난 3월 새학기를 앞두고 애플 스토어는 학생할인을 받아 노트북과 태블릿PC를 사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스타벅스' 입장권으로 통하는 애플 PC는 이제 MZ세대 새내기 대학생에겐 낯선 물건이 아니다. 물론 새로 받은 애플 노트북도 언젠가는 구형이 되기 마련이다. 그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애플 실리콘은 올해 지난해 무뎌진 깔 끝을 갈아내고 질주를 예고하고 있다. 애플은 2020년 발표한 PC용 시스템온칩(SoC) 'M1'으로 반도체는 물론 IT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애플은 지난해 M2칩을 선보이며 해마다 M시리즈를 업그레이드 할 것임을 예고했고, 올해는 M3 등장이 확정적이다.
애플이나 소비자 모두에게 M1에 비해 M2가 더딘 발전을 보인 것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애플 자체 설계 능력보다는 생산업체인 TSMC의 공정에 큰 변화가 없던 것이 이유로 꼽힌다. 과거 인텔도 '틱톡'(중국 동영상 업체가 아니다. 한해는 공정 개선, 다음해에는 설계 변경을 하는 것을 뜻한다) 전략을 구사했었다. 그러나 미세 공정이 한계점에 임박하면서 이런 전략을 구사하기가 어려워졌다.
애플은 대만 TSMC 덕에 5나노 공정에서 생산한 M1을 통해 경쟁사를 앞서 나갔지만 이후가 문제다. 지난해 선보인 M2의 경우 M1대비 성능 향상 수준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M1에서 경험한 극적인 변화를 기대했지만 반도체 업계의 혁신 부족에 발목이 잡혔다.
삼성의 갤럭시S22 GOS(Game Optimizing Service) 사태만큼은 아니지만 M2를 사용한 '맥북에어'에서 발열 현상이 나타난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등장한 M2 맥북에어를 기대했던 잠재 구매자들에게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상황은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4분기(9~12월) 애플내 맥컴퓨터 관련 매출은 77억4000만달러에 그쳤다.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28.66%나 줄었다. 아이폰 감소율 8.17% 대비 감소폭이 유달리 크다. 애플은 오는 5월 발표할 1분기 실적도 5%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M2 PC 판매 부진은 한해 전 M1 PC 판매가 급증한 기저 효과가 컸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카운터리서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애플의 PC판매량은 전년동기 대비 22.8% 하락했다.
지난 1분기에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애플 PC 1분기 출하량이 40%나 급감했다고 파악했다. 이는 경쟁사들이 20%대 하락률을 보인 것에 비해 유달리 부진한 성과다. 반면 가트너는 같은 기간 애플 맥 PC 출하량이 34% 감소했다고 다소 엇갈린 분석을 내놓았다. 수치의 차이가 있지만 두 조사기관 모두 애플 PC의 하락세를 점친것은 맞다.
애플도 이런 상황을 이미 고려해 대응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자업계 전문매체 '더일렉'은 최근 반도체패키징 업체 관계자를 인용해애플이 M2칩 생산을 1~2월 두달간 중단했다고 전했다. 3월 들어 생산을 재개했지만 주문량은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애플측으로부터 확인한 소식은 아니지만 생산을 축소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애플이 설계한 반도체는 애플만 사용한다. 범용 반도체가 아니라 다른 회사에 팔 수도 없다.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지속하는 '치킨 게임'을 할 이유가 없다. 당연히 수요가 줄거나 단종이 예상될 경우 생산을 줄인다.
M2 생산 중단과 축소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도 연관지어진다. 다음 행보를 염두에 둔 팀 쿡의 '노림수'일 수 있다. 쿡은 공정과 재고 관리에서 탁월한 업적을 발휘하며 애플을 이끌어왔다. 쿡은 애플 채용 직후 방대한 재고를 이틀치로 줄인 경험이 있다. 애플 제품 제조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부품을 장부상 회계에 인식하지 않는 수완도 보였다. 쿡에게 '재고'는 금기어다.
올해 등장할 M3의 성능이 M2를 압도할 수 있다는 성능 결과가 퍼지는 것도 M2 생산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 M3가 등장하면 M2를 사용한 PC들은 구형이 된다. 구형 PC는 저가 모델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미 애플은 M1을 사용한 맥북에어의 가격을 미국에서1000달러 이하(일부 매장에서는 700달러대에서도 구입이 가능)로 낮춰 시장 둔화에 대응하고 있다.
M3는 어떤 성능을 보일까. 해외 팁스터(Vadim Yuryev)가 공개한 M3의 성능테스트 결과는 단박에 시선을 끌었다. TSMC 3나노 공정에서 제작한 M3가 5나노 공정에서 만들어진 M2 프로 및 맥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결과였다.
M3의 긱벤치6 싱클코어 테스트 점수는 3472점. 고급 모델인 M2맥스에 비해 24%나 빠른 결과다. M3가 멀티코어 테스트에서는 6%가량 느렸지만 M3의 뇌에 해당하는 코어는 8개로 M2맥스의 12개에 비해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능 향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실제 칩이 이 정도의 성능을 발휘할 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에 근접한 성능만으로도 M3가 가장 저렴한 맥북에어에 주로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성비는 더욱 치솟는다.
애플을 추격하는 칩의 상황은 어떨까. 애플에 맞설 수 있는 이는 저전력 SoC 기대주인 퀄컴이다. 퀄컴은 A시리즈 칩을 설계한 인력들이 만든 누비아(Nuvia)를 인수해 애플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퀄컴은 누비아가 ARM 설계에 기반해 만든 '오라이언'(oryon) 코어를 활용한 '스냅드래곤 8cx 4세대(snapdragon 8cx gen 4)'으로 아이패드, 맥북에 맞선다는 복안이다. 이는 ARM기반 PC경쟁이 본격화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에 긱벤치에 공개된 스냅드래곤 8cx 4세대의 스펙은 12개의 코어와 2.38gHz의 작동속도였다. 구체적인 성능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스냅드래곤 8cx 4세대에 누비아의 '오라이언' 코어가 사용된다면 애플 M시리즈에 대항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리뷰 매체 '탐스 하드웨어'는 누비아의 코어를 탑재한 '스냅드래곤 8cx 4세대'가 애플 M시리즈의 호적수로 부상할 수 있지만 윈도 진영에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 인텔과 AMD가 x86 CPU로 장악해온 시장에 제대로 된 윈도용 모바일 저전력 고성능 CPU가 등장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M3를 사용한 맥북은 하반기 출시가 예상된다. 13인치 15인치 M3맥북에어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6월5일 열리는 애플세계개발자회의(WWDC)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스냅드래곤 8cx 4세대 칩은 올해 후반 발표되고 내년 중 관련 제품이 출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