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주기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반도체 업종을 팔아치우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재고 우려와 원·달러 환율 상승세 탓에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들어 15일까지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442억원어치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SK를 3505억원어치 팔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주가도 다시 하락세다. 연초 종가 기준 5만5500원에서 6만원을 돌파하며 반등했지만, 이날 다시 6만원선이 무너졌다. 15일 소폭 반등했지만 5만9800원으로 장을 마쳤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역시 7만5700원에서 9만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내림세로 돌아섰다. 15일 종가는 7만9100원으로 8만원선마저 무너졌다.
외국인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던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회복 지연과 원·달러 환율 상승 탓이다. 우선 반도체 업황 둔화로 재고가 예상보다 증가하면서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3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메모리반도체 재고자산은 56조원으로 전 분기 대비 12% 늘었다. 글로벌 매출 재고자산 회전율은 전 분기 대비 36% 하락한 0.5배 수준이다. 올해 1분기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전 분기 대비 20%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긴축 기조와 경기 둔화로 올해 1분기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실적도 예상치를 하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글로벌 IT 수요와 한국 반도체 수출의 회복 속도가 약화하고 있어서다. 서승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1월 들어 악화한 한국 반도체 출하, 재고 사이클 및 재고·출하 비율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며 "최근 메모리반도체 주가는 낮아지는 상반기 실적 눈높이와 메모리 업황 회복 지연 가능성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추정치는 전년 동기보다 84.16% 감소한 2조2370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64조4341억원(-17.16%), 2조290억원(-82.08%)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적자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1분기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 추정치는 각각 2조7988억원, 2조3092억원이다.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55.68% 줄어든 5조3876억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반도체 업황 회복이 예상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실적도 1분기 대비 나아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반도체 재고가 과도한 수준인데다, 2분기부터는 삼성전자의 모바일경험(MX) 사업부 마진도 하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반도체 재고 수준이다. 재고를 줄이려면 생산량을 줄이고, 재고 평가손실도 반영해야 한다. 이 연구원은 "생산량을 줄일 경우 고정비 부담이 더 커져 칩당 원가는 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결국 깊은 적자의 골짜기를 건너야만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재고 못지 않게 다시 오른 원·달러 환율도 부담이다. 지난 3일 1301.00원으로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은 10일 1323.00으로 상승했다. 이튿날 급락했으나 14일 1311.50원으로 마감했다. 15일에는 1319원으로 더 뛰었다.
외국인이 삼성전자 '팔자세'로 전환한 시기가 원·달러 환율이 오른 시기와 일치한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기 시작한 2월3일(1229.4원), 장중 2개월 내 최고치(1305.0원)를 찍고 마감한 2월17일(1299.5원) 기준으로 14일까지 외국인은 누적 순매도를 나타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주식 매매로 이익을 내도 환차손을 볼 가능성이 있어 외국인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다만 지금이 반도체 비중 확대 타이밍이라는 시각도 있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1분기 재고자산 증가폭이 크게 둔화하며 정점 구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매출·재고자산 회전율과 더불어 업종 주가는 저점(Bottom out)이 기대되므로, 방향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