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15년간 중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해오던 제트기 개발 사업의 공식 중단을 발표한 가운데 일본 내부에서는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좌초로 일본이 그동안 추진해 온 독자 항공기술 확보에 큰 제동이 걸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차대전 이후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항공기 생산 및 기술의 확보를 위해 미쓰비시와 공동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시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쓰비시는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제로센(零戰)'이라 불리던 A6M 전투기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2차대전 패망 이후에는 기술개발이 제한돼왔다.
9일 미쓰비시 중공업은 여객 제트기 개발 사업인 '스페이스 제트'를 공식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스페이스 제트는 2008년부터 시작된 국산 항공기 부활 프로젝트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결국 사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종료됐다. 이즈미사와 세이지 미쓰비시 중공업 사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개발 규모의 견적을 어림짐작했다”,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도 없었다” 등으로 프로젝트 중단의 변을 전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1조엔(약 10조원)의 개발비가 들어갔으나 결국 상업운항에 필요한 형식증명(TC)조차 얻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됐다.
사실 일본 민간 여객기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일본에서는 국가 주도로 국산 민항기를 만드는 'YS-11'이라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일본 정부 60%, 민간 기업 40%를 출자해 설립한 일본항공기제조주식회사를 모태로 사업을 시작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9년간 민간 항공기 182대를 만들었으나 가격 경쟁력 등에서 밀려 결국 360억엔의 적자를 남긴 채 해산한다. 실패로 끝난 셈이다.
이후에도 일본 단독으로 개발에 착수했으나 무리가 있다고 판단, 결국 보잉767 공동개발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부터 일본 항공업체들은 탄소섬유 등을 담당하는 공급업체의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부품이 아닌 기체 생산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던 셈이다.
큰 여객기를 무작정 들여오기 어려운 일본의 특수성도 있다. 일본 민간 여객기의 라이벌은 다름 아닌 고속철도 신칸센이다. 열차 수준의 정시성을 담보로 경쟁을 벌여야 하므로 일본 국내선에서는 보잉 737, 에어버스 320 등 소형 모델의 비행기가 자주 사용된다. 신칸센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이런 일본의 사정에 적합한 항공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표면적으로는 차후 민간 항공기 시장에 일본이 뛰어들기 위해서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번 프로젝트 불발로 일본 내부에서 우려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군용기 사업이다. 이는 일본 방위산업성의 목표와 맞닿아있다. 방위성은 F-2 전투기의 차기 모델을 일본 주도로 개발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장비가 고도화되고 있고, 개발비가 막대하기 들기 때문에 이를 일본 단독으로 진행하기보다는 유럽과 협력해 공동개발에 나서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한 일본 언론은 "방위성이 개발을 진행하려고 하는 차기 전투기는 항공기 기능뿐만 아니라 다른 전투기와 전함과 제휴하는 네트워크 기능도 요구된다"며 "전투기 공급 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위 장비 업체와 협상과 조율을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일본 항공 기술은 대부분 미국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국산화로 자립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미쓰비시 중공업만 하더라도 50년간 민간 항공기를 개발해본 경험이 없었다. 일본의 한 인터넷 경제매체는 "이번 스페이스 제트로 획득한 저연비·저소음 기술, 가공기술과 설계 기술 등은 향후 항공기 개발을 위해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이 기초기술은 항공자위대용 차기 전투기 공동개발에 있어 일본의 버닝 파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실상 프로젝트가 수포 돌아간 상황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이 차기 전투기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느냐는 비판이 일본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심지어 양산에 실패했기 때문에 캐나다 봄바디어, 브라질 엠브라에르 등 산업을 주도하는 해외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려워졌고, 이런 상황에서 차기 전투기 공동개발에 해외와 손을 잡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이에 이번 프로젝트의 경영 자원을 일본, 영국, 이탈리아 등 3개국에서 개발을 목표로 하는 차기 전투기 사업에 돌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사실상 이번 여객 제트기 사업이 군사력 증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관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산업성에서 항공 무기 산업 등을 맡았던 이토 신스케 리모노 사장은 칼럼을 통해 "평화에 익숙한 일본에서는 방위산업이나 방위기술을 높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그러나 항공기 산업에 종사하다 보면 방위와 민간이 함께 기능하지 않으면 유럽, 러시아 중국 등과 대두로 갈 수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알 수 있다"며 민간기 개발이 곧 방위산업과 직결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