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나는 구식이다. (신임 사장이) 젊음을 무기로 내가 할 수 없었던 모빌리티 컴퍼니로의 변혁을 꼭 추진해주길 바란다."
세계 1위 자동차 제조업체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지난 26일 14년 만에 회장직 승진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는 4월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지만 기자회견장에서 쏟아낸 그의 발언은 자신이 사장직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회장의 역할은 신임 사장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후임 사장으로는 1992년 도요타에 입사해 코롤라와 프리우스 등의 부품 개발에 종사해 온 사토 고지 집행임원이 임명됐다. 도요다 사장은 후임자 지명 이유를 두고 '젊음'을 언급했다. 사토 집행임원은 도요다 사장보다 13살 어리다. 도요다 사장은 "정답을 모르는 시대에 변혁하려면 총수가 현장에서 계속 서 있을 수 있는 체력과 기력, 열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도요다 사장은 도요타자동차를 창업한 도요다 기이치로 전 회장의 증손자로 '창업자 4세'다. 올해 66세인 그는 1979년 일본 게이오대를 졸업한 뒤 1984년 도요타에 합류했다. 2000년 44살의 나이에 도요타에서 이사로 발탁된 뒤 2002년 상무, 2003년 전무, 2005년 부사장을 거쳐 2009년 6월 14년 만에 창업가 출신으로 사장에 취임했다.
취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도요타는 2008회계연도 기준 4610억엔(약 4조4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위기에 빠진 상황이었다. 사장 취임 이듬해인 2010년에는 미국에서 도요타 대량 리콜 문제에 직면해 직접 미 의회 공청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공장이 큰 피해를 보았고 공급망이 중단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당시의 경험이 도요타가 코로나19에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도요다 사장은 도요타를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끌어 올렸다. 2020년 5년 만에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 1위에 복귀한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에서 제너럴모터스(GM)에 1년 만에 자동차 판매 1위 자리를 빼앗겼고 지난해 중국 내 판매량도 2012년 이후 10년 만에 감소했다.
도요다 사장은 사장 교체를 결심한 시점이 지난해였다고 밝혔다. 그는 "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1년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사장을 10년 이상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13년 걸렸지만 (지금) 사장 교체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요시다 타츠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는 "사토 신임 사장이 업무를 시작하면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회사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면서 "도요다 사장이 회장직을 맡으면서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과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계 1위 업체 도요타의 사장 교체는 기존 투자 전략의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도요다 사장은 전 세계 자동차 제조 시장이 집중하고 있는 전기차로의 전환에 회의적인 시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까지 같은 입장을 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2월 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을 만나 "자동차 업계에서 침묵하는 다수는 전기차만을 추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면서 전기차는 가솔린 엔진에 전기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 수소전기차와 함께 하나의 옵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도요다 사장의 이러한 판단은 도요타의 전기차 전환을 늦추는 요인이 됐다. 도요타는 2021년 전기차 전환 가속화에 3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GM이나 혼다 등 다른 경쟁사에 비해 수소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차종에 투자한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개발된 하이브리드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를 중심으로 전기차 열풍이 불면서 2020년 7월 도요타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테슬라에 밀리게 됐다. 도요다 사장은 2010년 5월 테슬라에 5000만달러를 출자해 주식 3.15%를 매입한 뒤 전기차 공동 개발에 나선 적 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협력 실적이 저조했고 2017년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도 했다.
사토 신임 사장은 "자동차의 본질적인 가치를 지키고 새로운 모빌리티의 형태를 제안하고 싶다"면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