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서율기자
[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50대 주부 박 씨는 최근 지방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지만, 계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청약 시점만 해도 분양가가 주변 인근 단지 비슷한 평수 시세보다 낮았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최근 실거래가가 7000만원 더 내리면서 시세보다 분양가가 더 비싸졌기 때문이다. 박 씨는 "실거주 목적으로 청약을 신청하긴 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상황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청약 시장에도 한파가 찾아왔다. 청약 완판에 성공하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매매가격에 실제 계약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청약자들이 늘면서 미계약으로 인한 미분양 물량도 생기고 있다. 분양을 앞둔 건설사들은 분양 일정을 조정하는 등 생각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8일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1월~12월까지 올라온 무순위 청약 공고 게시물은 총 376개였다. 지난해 1년 동안 올라온 게시물은 189개였는데, 약 두 배 정도로 공고가 늘어난 것이다. 입주자 모집공고 후 미분양, 미계약 등이 발생하는 경우 해당 물량을 무순위 청약으로 공급할 수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이 집계한 이달 미분양물량 전망지수는 135.8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산연은 청약 당첨 후 미계약, 수분양자들의 계약 취소 등으로 미분양 물량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봤다.
고민이 깊어지는 수분양자가 늘면서 분양 미달이 나지 않았음에도 건설사들은 쉽게 안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광주 더파크 비스타 데시앙’의 경우 일반공급 당시 경쟁률은 저조했지만 2순위 공급까지 진행되면서 전 주택형 완판에 성공했다. 그러나 수분양자의 미계약, 계약취소 혹은 부적격 당첨 등으로 전용면적 114㎡ 세 주택형에서 192가구가 무순위 공급되면서 오는 12일 청약 신청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 수원시 ‘영통 푸르지오 트레센츠(A1BL)’, ‘영통 푸르지오 파인베르(A2BL)’는 일반공급 당시 각각 최고 27.34대 1, 15.42대 1의 높은 경쟁률로 전 주택형이 1순위 마감됐지만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무순위 청약 공고를 세 차례 냈다. ‘영통 푸르지오 파인베르(A2BL)‘(전용면적 84㎡C)는 10월 무순위 청약에도 5가구가 미달됐다.
지난해만 해도 걱정이 없었던 서울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두 달 동안 ‘올림픽파크 포레온’, ‘장위자이 레디언트’ 등 대단지 일반공급이 이어졌지만, 생각보다 저조한 경쟁률에 계약까지 두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두 자릿수 경쟁률을 채우지 못할 경우 심리적 악재로 작용해 미계약이 상당수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서울의 경우 분양가상한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시세만큼 분양가가 나와 수요자들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확실하게 싼 것이 아니면 뛰어들지 않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청약 수요 자체가 줄면서 미분양 단지는 지난해에 비해 많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4만7217호로 집계되며, 전월 대비 13.5%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미분양 주택이 1만7710호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약 2.7배 많은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에서 7612호, 지방은 3만9605호로 집계됐다. 악성 미분양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전국 총 7077호를 기록했다.
‘줍줍’으로 불리며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무순위 공급도 올해는 찬 바람만 쌩쌩 불며 재차 공고를 내는 단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천 연수구 ‘송도 Luxe Ocean SK VIEW’는 반복되는 미달 끝에 지난달 10차 무순위 청약 공고를 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 관악구 ‘신림스카이아파트’는 같은 달 14차 무순위 공고를 냈다.
청약 수요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건설사들의 분양 일정 계획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부동산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준금리, 자재비 인상, 부동산 PF 문제까지 겹치면서 분양 일정을 앞당기는 경우도 나온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고 불리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역시 부동산 PF 자금경색, 고금리 이자 부담 등으로 내년 1~2월로 예상했던 일반분양을 앞당겨 이달 진행했다.
한 분양 관계자는 "내년 경기가 더 안 좋아진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분양 시기를 앞당긴 경우도 몇 곳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