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요금 문제가 아니라니까' 배달간 택시 기사들 돌아올까

정부, 국토부 '심야 택시난 완화대책' 발표
심야택시 호출료 올려 기사 처우개선
현장서 만난 택시 기사들 "그래도 배달업이 돈 더벌어"

정부가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택시 기사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정책에 따르면 월 40만 원 정도 더 수익을 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기사들의 견해다. 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아니 남는 게 없다니까요." , "다들 배달하러 나갔지, 누가 택시 하나."

정부가 4일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날 오후 만난 택시 기사들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 등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만 보였다. 택시 업계에서는 처우 개선을 더 살펴봐달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대책 시행 이후, 정책을 다듬겠다고 밝혔다.

서울 강북 일대에서 만난 자신을 40년 경력의 올해 80세라고 밝힌 택시 기사 김모씨는 "택시 요금 인상 문제가 아니라, 일단 기사가 줄어들었다, 또 배달 기사로 취업을 나간 기사들이 다시 돌아오겠느냐, 이 말씀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택시 안에서 진행 된 인터뷰에 그는 작심한 듯, 정부가 노력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실효성 측면에서는 아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교통부는 심야 시간 택시난을 해결하기 위해 호출 요금을 최대 5천원까지 올리기로 했다. 현재는 호출료를 플랫폼 업체가 절반을 갖고 나머지를 택시 법인이나 기사가 나눠 갖는 구조다. 그러나 인상분에 대해서는 90% 가까이를 기사에게 배분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야간에 택시를 운행할 경우 한 달에 약 40만 원가량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호출료를 받게 되면 목적지를 표시하지 않거나 승객을 강제 배차하는 방식으로 승차 거부를 차단한다. 또한 승객이 몰리는 금요일이나 야간에만 일하는 택시 아르바이트가 허용되고,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는 부제도 해제한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로 서울의 심야 택시가 3,000대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다음 날인 지난 5월19일 자정을 넘긴 시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잡기 위해 서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야간 손님 많아 보여도…기사들 입장에서는 부족, 차라리 배달이 더 벌어"

그러나 기사들은 '40만 원' 늘어나는 수입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택시 기사 김 씨는 "하루 뛰면 십몇만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중 사납금으로 수익 얼마를 회사에 납부하고 그럼 손에 쥐는 게 별로 없어요. 문제는 여기서 일어납니다. 더 벌려고 핸들을 쥐어야 하는데, 하루 8시간 꼬박 일하고, 먹고 살려면 잠을 자야 할 것 아닙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 이후) 그래서 야간에 일하러 나온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럼 저 혼자만 일합니까? 야간 손님이 많습니까? 장거리 손님이 매일 있습니까? 이게 현실이에요, 현실, 40만원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사들 별로 없어요."라고 탄식했다.

이른바 '배달업으로 업종을 전환한 택시 기사'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하루를 쥐어짜서 일하는거랑 운전을 업으로 하던 사람들이 배달하면 더 벌 수 있는데, 누가 핸들을 다시 잡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배달 나간 기사들 다시 안들어와요, 지금 차고지에 남는 택시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이런 걸 좀 분석해서 정책에 반영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40대 택시 기사 역시 "배달 수익이 더 높다는 얘기가 많습니다"라며 "그럼 당연히 그쪽(배달 라이더)으로 가죠, 이거(택시업) 이렇게 힘든데…"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기사들의 푸념과 같이 시에 따르면 법인 택시 면허 수는 현재 2만2000개이지만 법인 택시 기사 수는 약 2만 명에 불과하다. 수치만 놓고 보면 운행 택시 수보다 기사 수가 적다. 또한 약 5만 대에 달하는 시 개인택시 중 1만2000대 정도만 심야 운행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시업계에서 수익이 높은 배달 대행업체나 대리운전, 택배 등의 업종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택시 업계에서는 처우 개선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호출료 상한 범위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협회 관계자는 "탄력 요금 등을 조금 더 확대해서 적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라면서 "이번 정책 등으로 추가 수익이 나오는 부분은, 택시 기사들이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다만 '배달 업계로 나간 기사들'에 관해서는 "예를 들어 택시 회사에서 택시 10대 중, 4대만 운행을 하는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택시 기사 처우개선 정책이 다른 정책과 유기적으로 맞물려 서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하나의 정책으로 평가를 하기는 좀 어렵다"면서 "사안의 본질을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컨대 택시 요금 인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으면 요금 인상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서로간의 정책을 비교하며 어떤 균형점을 찾아가며, 시너지 효과를 서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그래도 지금처럼 이렇게 택시 관련 정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야간에 택시 승객들이 택시를 잡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국토부 "이탈한 기사들 돌아오게, 요금은 다시 조정"

정부는 지속해서 기존 택시에 대한 처우 개선을 검토할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4일 오후 SBS 8뉴스에 출연해 심야 택시 대책과 관련해 "법인택시든 개인택시든 차를 운전하고 실제 그 시간에 나와 승객을 모시고 갈 기사들의 처우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절대적 기준일 뿐, 나머지 저희는 국민과 기사들의 처우 개선에 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택시 또는 비택시 제도의 혁신에 대해 이번엔 기득권이나 기존의 관성 때문에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택시 요금 인상안에 대해서는 "당장이 급하니까 호출료에 탄력을 줘서 이탈한 기사들을 돌아오게 하고 (인상이) 기사들이 밤에 나오게 하는 데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었는지, 국민들이 수용할 만한 요금 수준인지 데이터를 엄밀하게 분석하고 공개해서 다시 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 안과 별개로 서울시는 연말부터 서울 중형택시 기본요금을 현행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심야 기본요금은 4600원에서 53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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