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윤기자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밀, 고기 섭취 증가 등 식습관의 서구화와 더불어 가구 구조 변화에 따라 쌀 소비는 점점 감소하는 추세지만 육류 소비는 점차 증가하면서 가까운 시일 내로 고기가 쌀 소비를 추월할 태세다.
15일 전국한우협회에 따르면 올해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6.5kg 수준으로 처음 1인당 쌀 소비량을 넘어설 전망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올해 54.8kg 수준으로 예측됐으나 이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도 있다. 전국한우협회와 대한한돈협회, 한국육계협회 등은 올 초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진 않았으나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소·돼지·닭) 역시 55.9kg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u><i>아시아경제 7월 25일자 1면 '한국인 밥심은 옛말...쌀보다 고기 소비' 기사 참조) </i></u>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 56.9kg과 불과 1kg 차이로 추월을 목전에 둔 셈이다. 육류 중에선 돼지 소비가 27.6kg으로 가장 많았고 닭이 14.7kg, 소 13.6kg 순이었다.
육류 소비량은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약 3%씩 증가했다. 2015년 46.9kg이던 것이 2018년 53.8%로 50%대를 넘어섰고 이후로도 쭉 상승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엔 전년보다 다소 하락한 52.5kg을 기록했으나 다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반면 쌀 소비량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1970년 연간 쌀 소비량은 1인당 136kg으로 육류 소비량 5.2kg의 26배에 달했다. 육용으로 쓰이는 소, 돼지, 닭 등 가축 사육 두수가 많지 않아 육류가 귀했던 반면 농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산량이 점차 늘자 쌀은 전성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이런 흐름은 반대가 됐다.
육류 소비량은 1980년 11.3kg으로 처음 10kg대를 넘어선 이후 1985년 14.4kg, 1990년 19.9kg, 1995년 27.4kg으로 매년 증가했다. 반대로 이 기간 쌀 소비량은 132.4kg→128.1kg→119.6kg→106.5kg으로 감소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뒤엔 육류는 32.9kg으로 30kg대에 진입했고 쌀은 93.6kg으로 두 자릿수가 됐다. 2012년만 해도 69.8kg이던 쌀 소비량은 매년 하락해 2019년 59.2kg으로 사상 처음 50kg대로 내려왔고 지난해 56.9kg으로 전년(57.5kg) 대비 1.4% 감소했다. 이 수치는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년 안에 쌀 소비량이 50kg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같은 배경에는 가공식품과 외식 중심으로 식습관이 변화하면서 내식이 줄고 한 상 가득 식사를 차리던 문화가 변화한 것이 자리 잡고 있다. 서구식 식단에 익숙한 세대가 많아졌고, 이를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 산업이 발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들어서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동시에 쌀을 비롯한 탄수화물군이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 등이 유행한 측면도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한몫한다.
식생활 변화는 관련 산업 지형도 크게 바꿨다. 대표적인 수혜 산업은 즉석조리식품 등 가정간편식(HMR)이다. 2020년 국내 즉석조리식품 오프라인 소매시장은 매년 10%씩 성장하고 있다. 남아도는 쌀을 활용하는 산업도 활성화되고 있다. 정부는 쌀가공산업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2011년 쌀가공산업법을 제정했고, 2014년부터 1·2차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육류 섭취 증가세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한국인의 건강 상태에도 변화가 뚜렷하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으나 충분한 육류 섭취가 청소년 체격 향상과 비만율 증가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은 많다. 아울러 대장암 등 과거 서양인과 비교해 유병률이 낮았던 질병이 한국에서도 일반화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영은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쌀 소비가 줄어들고 육류 소비가 느는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고 특히 젊은 연령대에선 육류 섭취가 과다한 반면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는 노년층에선 기준에 못 미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전반적인 흐름을 바꾸긴 쉽지 않겠지만 사실 지금의 식습관은 영양학적으론 균형 잡힌 식사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휘 세종대 식품생명공학전공 교수도 "특히 대체육 등도 쏟아지는 상황이라 쌀 소비가 회복되려면 기존 식품 섭취 형태에서 벗어나 이를 다양하게 활용한 메뉴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