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기자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추가적으로 대폭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독일 등 유럽에서는 기술적인 이유 없이 감축에 나서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러시아가 발트해 해저를 통해 독일로 연결되는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의 터빈의 가동을 추가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앞서 지난 21일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의 정기 점검을 위해 열흘 동안 중단했던 가스관 가동을 재개한 바 있다.
가스프롬은 이날 "독일로의 가스 수출이 전체 파이프 용량의 약 5분의1로 줄어들 것"이라면서 이는 터민의 제재 관련 문제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포르토바야 가압기지에선 현재 2개의 터빈만이 가동되고 있는데, 1개 터빈이 더 가동 중단되면서 터빈 하나만 남게 된다는 얘기다.
가스프롬은 이에 따라 현재 용량의 40%에 불과한 공급량은 20%로 감소하며, 이는 오는 27일부터 유효할 것으로 전망했다. 회사 측은 "모스크바 시간 기준 27일 오전 7시부터 포르토바야 가압기지의 하루 가스운송량이 현재(하루 6700만㎥)의 2분의 1인 하루 3300만㎥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루 3300만㎥의 운송량은 노르트 스트림-1 가스관 전체 용량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같은 러시아의 결정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이어진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무기화를 통해 유럽의 정치적 균열을 일으키고,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력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경제 싱크탱크 브뤼겔의 시몬 탈리아 피에트라 선임연구원은 "러시아는 전략적 게임을 하고 있다"면서 "완전한 차단보다 (이렇게) 낮은 수준의 공급이 시장을 조작하고 지정학적 영향을 최적화하는데에 더 낫다"고 설명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발표 당일 "공급 감축에 대한 기술적인 이유가 없다"며 비난했다.
실제 러시아의 계산은 맞아 떨어져가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가스 저장고를 채우려는 유럽에서는 정치적 위기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독일은 가정과 병원 및 기타 중요 부문 가스 공급과 산업용 가스 부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화학 분야 등 가스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거나 해고해야 하는 위험도 발생할 수 있다고 WSJ은 내다봤다. 이날 독일의 이포연구소는 에너지 문제가 7월 독일의 기업심리를 압박했다고 분석하면서 "독일이 경기 침체의 문턱에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른 국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예측에 따르면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는 공급이 전면 중단될 경우 경제 생산량이 최대 6.5%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IMF는 이탈리아가 최대 5.7%,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각각 거의 3%씩 경제 생산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의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다른 경로의 에너지 공급도 중단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들어가는 야말-유럽 간 송유관을 막았다. 원자재 데이터 업체인 ICIS에 따르면 이달 상반기 유럽은 전년 대비 러시아 가스 수입량이 70% 가량 줄었다. 그 외에는 소량의 연료만이 LNG 형태로 배에 실려 수입될 뿐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