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슈퍼 IP 시대, 변해야 산다…영화 넘어 TV·OTT로 확장'

김도수 쇼박스 대표
영화 투자배급사 이미지 탈피, 드라마 제작 등에도 박차
기획창작집단 구성해 대중과 접점 확대, 메타버스·NFT 사업도
송강호·이병헌·전도연 '비상선언' 기대
"40여 편 기획·제작 중…매년 각각 최소 5편씩 공개"

김도수 쇼박스 대표가 30일 서울 강남구 쇼박스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비상선언’은 총제작비 300억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다. ‘관상(2013)’·‘더 킹(2016)’의 한재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송강호·이병헌·전도연·김남길·임시완 등 충무로 간판 배우들이 출연한다. 비행기에서 펼쳐지는 재난 상황을 다룬 내용은 이미 지난해 7월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다.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기세에 편승해 개봉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헛물켰다. 코로나19 확산세를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자금 회수 길이 막히면 재투자는 난항에 빠진다. 운영과 관리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쇼박스는 영화에 전적으로 기대온 회사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제작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의존도가 95% 이상이었다. 코로나19로 사업 길이 막힌 지난 2년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지난 5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영화관 환경은 호전됐다. ‘1000만 영화(범죄도시 2)’가 나왔을 정도다. 그런데 쇼박스는 영화만 고수해온 기존 방식의 탈피를 선언했다. 드라마 제작을 확대하고 메타버스·대체불가토큰(NFT) 사업에 뛰어들었다. 드라마 제작과 관련해 기획·개발 중인 작품은 약 마흔 편. ‘마녀’, ‘현혹’, ‘극야’, ‘연옥의 수리공’, ‘유물 읽는 감정사’, ‘영웅의 변수’, ‘우투리’, ‘국가의 탄생’…. 올해와 내년에 최소 세 편씩 제작한다. 크리에이터들과의 견고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적재산(IP)을 확보한다.

NFT 사업은 지난 4월 1316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미국 투자사 MCG에서 맡는다. 차세대 플랫폼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축으로 특화된 콘텐츠를 투자·제작한다. MCG는 LS그룹 3세 구본웅 대표가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회사다. 쇼박스 지분 약 30%를 확보해 2대 주주에 올랐다.

다양해진 계획은 김도수 쇼박스 대표(사진)가 진두지휘한다. 제작 일선에서 10년 이상 투신하며 쇼박스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다. 경험을 살려 감독·작가·프로듀서로 기획창작집단을 구성하고, 슈퍼 IP 개발에 걸맞은 환경을 조성한다. 능동적으로 유통 분화를 모색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8~9년 전부터 기획해온 콘텐츠 확장 비즈니스다. 단계적 변화를 구상하고 차근차근 실현해왔으나 플랫폼 환경 급변화로 박차를 가한다.

김 대표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쇼박스의 과제와 미래 비전을 설명했다. 그는 "발 빠르게 변모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영화와 TV·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로 범위를 넓혀 다양한 작품을 준비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영화 배급사로 인식되고 있지만 1년에 영화와 드라마를 최소 다섯 편씩 선보인다면 달라질 것"이라며 "단순히 다양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콘텐츠를 함께 즐기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정상 운영이 불가피하다시피 했다.

▲처음 피해를 본 영화는 ‘남산의 부장들’이다. 2020년 1월 22일 개봉했다. 첫 주에 큰 인기를 얻어 700만 명 동원도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CGV 성신여대입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남산의 부장들’을 관람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관객의 발길은 뚝 끊겼다. 목표한 기록에 도달하지 못했다. 수익(관객 475만104명)을 내긴 했다. 애초 계획한 개봉일이 그해 4월이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처음에는 총선(4월 15일)을 앞두고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을 듯했다. 정치적 이슈에 휘말릴 여지가 많다고 판단해 3개월을 앞당겼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제작 중인 영화들이었다. 그해 4월 모로코 촬영을 앞뒀던 ‘피랍’ 제작진의 입국이 불허됐다. 금세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쇼박스에서 영화에 투자한 돈이 약 1200억원이었다. 영화를 개봉해야 자본이 순환되는 시스템이 무너져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쇼박스뿐 아니라 영화산업 전체가 무너질 위기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줄어들어 개봉을 준비하면 다시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됐다. ‘싱크홀’의 경우 내부적으로 개봉을 네 번이나 미뤘다. 영화관이 위태롭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투자배급사도 다르지 않았다. 대중의 영상 콘텐츠 소비 패턴이 바뀌지 않았나. OTT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진 만큼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이전부터 ‘이태원 클라쓰’를 제작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긴 했다. 그런데 속력을 내야겠더라. 영화 사업에 집중해온 역량을 빠르게 투입했다.

-다양한 OTT의 등장으로 수익 활로가 추가됐으나 조건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돌던데.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웃음). 쇼박스는 역사가 깊은 만큼 라이브러리에 강하다. 지금의 OTT 환경은 대중에게 우리 작품을 꾸준히 어필할 기회다. 특정 OTT와 독점 계약을 맺지 않아 그런 소문이 난 듯하다. 액수도 중요하지만, 장기적 시선으로 접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노출이 전략적으로 더 유리할 테니까.

-쇼박스는 모기업 오리온의 캐시 카우였으나 지난 2년간 아픈 손가락이 됐다.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을 듯하다.

▲영화 개봉을 진행하고 그 결과에 웃고 울던 날들이 사라져버렸다. 대다수가 에너지를 어떻게 소비해야 할지 막막해했다. 그나마 제작본부는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마음고생이 덜했다. 장고 끝에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종합 콘텐츠 스튜디오로 바꿨다. 조직체계부터 달리했다. 투자본부를 제작본부로 바꾸고 관련 직원들의 직위를 프로듀서로 변경했다. 자율성을 부여해 제각각 시나리오·대본을 가져와 프로젝트로 발전시킨다. 외부 제작사와의 협업이나 자체 제작 시스템도 전문화해 다양한 IP를 확보한다.

-아직까진 영화 투자배급사의 이미지가 강한데.

▲우리 콘텐츠가 대중과 얼마나 접점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콘텐츠를 꾸준히 만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모두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무조건 새로울 필요는 없다. 아직 공개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보유한 검증된 IP를 드라마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애초 드라마화를 염두에 두고 IP를 작업하기도 하고. 이제는 슈퍼 IP 시대다.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속편이나 드라마로 어떻게 구성할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세계관 확장의 기준이 따로 있나.

▲최근 세계적으로 흥행한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의 세계관은 허구가 아니다. 하나같이 일어났던 일들이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다룬다. 그게 대중과 소통하는 힘이다. 많은 창작자가 상상으로 만든 세계관을 제시한다. 여기에 통찰력과 현실감을 부여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붙여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진행해보니 크리에이터 간 파트너십이 상당히 중요하더라. 그래서 기획창작집단을 구성했다. 슈퍼 IP에 주안점을 두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세밀하게 작업한다. 당연히 가장 공을 들이는 집단은 작가다. 플랫폼의 경계가 희미해져 모두가 열린 사고로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포맷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국내 콘텐츠의 세계화로 소비자 폭이 넓어졌다. ‘비상선언’의 경우 169개국에서 개봉할 기반을 마련했다. 협상 과정이 꽤 길었다. 판매액 규모에서 이전과 차이가 큰가.

▲배급사들은 해외 세일즈를 앞두고 시뮬레이션한다. 어느 나라에 얼마에 판매할지, 마지노선을 얼마에 둘지 등을 정한다. ‘비상선언’의 경우 자신 있게 금액을 많이 올렸다. 칸영화제에서 공개되는 마당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웃음). 협상 과정에서 가격을 낮추지 말고 계속 버텨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우리가 원하는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높아진 K-콘텐츠 관심도 영향이 있었겠으나 배우들 덕이 컸다. 특히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은 해외 마켓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김도수 쇼박스 대표가 30일 서울 강남구 쇼박스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지난 2년간 개봉하지 못한 영화들이 쌓여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극장에 내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투자의 어려움이 금세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내년까지 밀린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할 거다. 문제는 내후년이다. 올해 투자된 작품들이 나올 텐데, 그 수가 많지 않다. 많은 창작자가 OTT로 방향을 전환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겠지만, 충분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영화 산업 전체가 침체할 수 있다. 문제를 극복하려면 빼어난 프로듀서들이 작품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마저 OTT로 눈을 돌리고 마땅한 시나리오도 많지 않다. 코로나19와 관계없이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그 틈새를 공격적으로 파고들기 위해 최근 OTT로 준비하던 작품까지 영화로 전환했다. 좋은 시나리오도 계속 찾고 있고.

-국내 영화시장이 2019년 정점을 찍고 내리막을 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같은 생각이다. ‘범죄도시 2’처럼 크게 흥행할 작품은 나오겠지만 이른바 ‘중박’을 터뜨릴 영화는 사라질 수 있다. 관람객 소비 패턴이 많이 변했다. 영화를 향한 시각도 냉정해지고. 아무리 완성도가 뛰어나도 재미가 없으면 외면받는다. 어중간한 영화는 더 그렇다. 그래서 잘 만들어야 한다. 블록버스터가 아니더라도 신선한 기획과 제작으로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만난 여러 영화인이 올여름 ‘외계+인’, ‘한산’, ‘비상선언’, ‘헌트’가 연달아 개봉해 4000만 명 이상 동원할 것 같다고 전망하더라. 극장가가 그 정도로 기운을 회복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더 지켜볼 일이다.

대담=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정리=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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