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석기자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수도권과 지방 간 인구·일자리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들도 지방 근무는 꺼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7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청년 301명에게 '지방근무 인식조사'를 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지에 대한 응답률을 보면 '다소 그렇다'가 49.2% '매우 그렇다'가 23.6%였다. 넷 중 셋꼴로 꺼린다고 답한 것이다. 비수도권 입사 지원 경험을 묻자 '전혀 안 한다'가 34.5%나 됐다. 셋 중 하나는 조건도 따지지 않고 지방이면 지원을 안 한다는 의미다. '가급적 안 한다'는 31.6% 공기업 등에만 제한적으로 지원은 19.6%였다. 지방 근무 기피 이유로는 '가족·친구 등 네트워크가 없어서'(60.7%) '생활·문화 인프라가 열악해서'(59.8%) 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밖에 '원하는 직장이 없어서'(14.2%) '성장기회가 부족해서'(6.8%) 등도 거론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청년인구는 약 9만1000명으로 2010년보다 1.7배 이상 늘었다. 비수도권 인구 중 청년 비중 역시 2010년 19.7%에서 2015년 18.8% 2020년 17.6%로 계속 떨어졌다. 서울에 사는 A씨는 "서울은 늦어도 10분만 기다리면 버스가 오는데 지방은 차 없이 이동도 어렵고 서울 어디서든 되는 당일배송도 안 된다더라"며 "생활 인프라도 부족한데다 가족도 친구도 없으니 지방에 근무하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고 털어놨다.
회사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건을 묻는 질문에 대해 수도권 청년들은 연봉(36.5%)과 근무지역(28.9%)을 1, 2위로 꼽았다. '수도권에서 근무할 수 있는지' 여부가 높은 연봉만큼이나 회사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21.3%) '개인 경력 개발'(9.3%) '회사의 성장 가능성'(2.7%) 등이 뒤를 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두 회사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각각 위치할 경우 어디로 입사하겠느냐는 질문에 '수도권 회사'라고 답한 이들의 비율이 98.3%나 됐다.
역시 '연봉'이 관건이었다. 적어도 1000만원은 올려줘야 지방 근무도 고려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앞서 수도권 회사를 택한 청년들에게 '연봉을 얼마나 더 줘야 지방 근무를 하겠냐'고 묻자 '1000만원'이라고 답한 이의 비율이 36.5%로 가장 높았다. '2000만원'·'500만원'(18.6%) '300만원'(9.8%) '1500만원'(8.8%) 등이 뒤를 이었다. 연봉을 아무리 많이 줘도 지방에선 일할 의향이 없다는 응답도 6.1%나 됐다. 경기도 판교에 사는 B씨는 "지방에서 혼자 살려면 별도의 주거비와 식비가 들어가고 주말엔 서울로 왕래해야 해 실제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며 "이 밖에도 부족한 생활여건이나 연애·결혼에 대한 걱정 등 간접적·심리적 요인까지 감안하면 금전적인 메리트(이점)가 더 커야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멀수록 선호도가 낮았다. 세종·대전까지는 참겠다는 반응이었다. 서울에서 어느 정도 먼 지역에서까지 근무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수원·용인'이 64.1%로 가장 많았고 '평택·충주'만 해도 31.9%로 반토막났다. '세종·대전'은 25.9%였다. 그나마 '평택·충주'와 비슷했다. 남부권으로 가면 확 떨어진다. '대구·전주'가 14.9%로 급감했다. 거리에 상관없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심지어 기업 규모가 작아도 수도권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방 4대그룹 소속 기업'(26.6%) 보다 '수도권 일반 대기업'(73.4%)에 입사하겠다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지방 일반 대기업'(49.8%)은 '수도권 중견기업'(50.2%)에도 밀렸다. 다만 중소기업은 수도권(52.8%)이나 지방(47.2%)나 큰 차이가 없었다. 중견기업 이상만 돼도 수도권에서 일하겠다는 청년이 많다는 방증이다.
청년들은 새 정부가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생활여건 개선'(38.5%)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인구를 단순 유입시키는 차원을 넘어 그 안에서 자족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기업 지방이전 촉진'(21.6%) '지역 거점도시 육성'(16.9%) '공공기관 이전 확대'(9.3%) '지역 특화산업 육성(7.3%)’등이 뒤를 이었다. 구직 3년차 C씨는 "지방에 마땅한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생활의 불편함이 걱정돼 몇몇 좋은 지방기업조차 지원을 꺼리게 된다"며 "지역 생활 여건을 개선하고 여가·문화시설 등을 유치해야 지역 내부에서 소비가 일어나고 생태계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인식 대한상의 산업정책실장은 "지역불균형 해소의 핵심은 결국 미래세대인 청년과 지역경제를 이끌어갈 기업이 스스로 찾아와 정착하고 싶은 지역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청년의 눈높이에 맞게 지역 생활여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기업에 친화적인 제도와 인프라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상의는 이번 조사와 관련한 영상을 별도로 만들었다. 지방 공기업에 합격했지만 지방근무가 부담돼 합격을 포기한 사례, 결혼을 위해 매주 주말 상경한 에피소드 등 청년 목소리를 담았다. 대한상의 공식 유튜브에서 확인하면 된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