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미기자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국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제한하고 시장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대기업집단 지정 제도’가 올해로 36년차가 됐다. 이달 1일자로 76개 기업집단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됐고, 이 가운데 47개는 추가 규제가 적용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됐다. 기업이 적용 받게되는 규제 수는 각각 최대 217개, 275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기업집단제 추가 손질을 통해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올해 공시대상기업 71개, 상호출자제한기업 47개=1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이달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대기업집단 정책 설명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대기업집단 정책에 대한 설명 및 공시교육 등이 동반된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일감몰아주기 및 사익편취 금지, 출자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적용 등 규제가 많고 복잡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해 대규모 기업집단 시책의 적용대상을 확정하고자 매년 공시대상기업집단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을 지정한다. 경제 여건의 변화를 반영해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은 꾸준히 변화 중이다. 1986년 12월 제도가 도입되고 1987년 첫 지정 당시만 해도 기준은 자산총액 4000억원 이상 기업이었다. 하지만 1993~2001년 자산순위 기준 30대 기업으로 바뀌었고, 2002~2008년 자산총액 2조원 이상, 2009~2016년 자산총액 5조원 이상으로 각각 바뀌었다. 2017년부터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을 공시대상기업집단, 10조원 이상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나눠 분류하고 있다.
지정 기준이 되는 자산총액 문턱은 높아졌지만 규제를 받게되는 대상 기업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공시집단수와 상출집단수는 2018년 각각 60개·32개에서 2020년 64개·34개로 늘었고 올해는 71개·41개로 뛰었다.
2024년부터는 자산이 10조원을 넘지 않더라도 국내 총생산액의 0.5% 이상을 차지하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묶인다. 규제를 받게되는 기업 수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환경 어떻게 달라졌나=경제계에서는 1987년 국내에서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명목으로 도입된 대기업집단지정제가 낡은 규제의 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기업들이 많아진 현 개방경제 시점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1980년대의 경우 한국의 경제개방도가 65% 수준으로 낮아 일부 기업이 시장독점을 통해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는게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개방도는 90%를 넘어 오히려 지나친 규제로 기업의 경쟁력까지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 사업보고서를 참고해 지난해 매출 상위 10대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을 조사한 결과 전체 매출의 66%가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개방경제 하에서 우리 대기업들이 규모가 작은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을 상대로 활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기업집단지정제가 도입된 198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가 전무했지만 지금은 57개국(2021년 3월 기준)에 달한다. 외국기업이 언제든지 한국 시장에 진입 가능해 일부 국내기업의 시장독점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의미다.
전경련 관계자는 "현재 대기업집단은 과도한 규제와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대기업집단 중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5조원 이상)은 최대 217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10조원 이상)은 최대 275개의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경영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대기업에 집중된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손질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성된다.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대기업집단 규제 대상이 되는 동일인(총수)의 친족 범위를 기존 6촌에서 4촌으로 좁히는 것을 추진했다. 합리적 규율로 기업부담을 완화하고 시장자율감시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친기업 의지를 밝힌 윤석열 정부가 1987년부터 이어져온 대규모기업집단제를 대폭 손질하기는 부담이 크겠지만, 글로벌화 시대에 각종 규제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규제 완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