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선언했지만, 예상보다 러시아군의 진격속도가 느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경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돈바스 지역은 산맥이나 대도시가 없는 평지 지형이라 러시아 탱크들이 빠른 속도로 진군할 것이란 기존 예상이 빗나갔죠.
러시아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일명 '라스푸티차(Rasputitsa)'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진흙탕으로 알려졌습니다. 매해 4월 봄철이 되면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서 거대한 진흙뻘판이 만들어지는데, 러시아 탱크와 군용차량들이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23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영국 국방정보국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군이 돈바스에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음에도 지난 24시간동안 전선에 큰 변화가 없다"며 "러시아군의 진군속도가 매우 느려지고 있으며, 이에따라 우크라이나군이 저항과 반격할 시간을 벌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주로 발생하는 라스푸티차는 특히 4월에 대량으로 발생합니다. 완전히 포장된 고속도로나 주요 간선도로는 통행에 지장이 발생하진 않지만, 비포장도로나 일반 평지는 차량 통행이 완전히 불가능할 정도의 진흙탕이 된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일반차량보다 훨씬 무거운 탱크나 장갑차의 경우, 라스푸티차를 통과하기 매우 어렵다고 분석합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샘 크래니 에반스 연구원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대규모 병력을 신속히 이동하려면 탱크나 장갑차가 간선도로가 아닌 비포장도로로 진군해야하는데 이런 무거운 차량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면 라스푸티차에 빠지기 쉽다"며 "주요 도로와 철도는 이미 우크라이나군이 수비하고 있는 상황이라 러시아군의 작전은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과거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과 1941년 아돌프 히틀러의 러시아 공세도 모두 실패한 주요 원인이 라스푸티차 때문으로 알려져있죠. 나폴레옹은 주력 부대인 포병대의 이동이 매우 느려져 진군속도가 제한되면서 식량 부족으로 패배하게 됐고, 나치 독일군도 탱크와 장갑차가 모두 진흙탕에 빠져 전투차량 대부분을 버리게 되면서 막대한 손실을 안고 패배하게 됐습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군은 봄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심각한 가을철 라스푸티차와 마주하게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지대는 9월부터 우기가 시작돼 막대한 폭우가 내리는데, 이때는 작은 승용차들도 통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이로인해 러시아군도 작전을 최대한 서두르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전쟁연구소(ISW)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마리우폴을 포위했던 러시아군이 휴식없이 곧바로 돈바스 공격을 위해 북상했다"며 "부대 재배치와 보급로 확보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군속도만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군도 작전이 지연될수록 더욱 불리해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진군속도를 매우 서두르고 있다는 것인데요.
더구나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인 다음달 9일까지 러시아군이 대부분 작전을 완료하기 위해 더욱 서두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공습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