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슬기나특파원
이현우기자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이현우 기자]폭등하는 국제유가를 지켜보는 경제 전문가들의 시선에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유가 급등부터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 동유럽을 겨냥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까지 1970년대의 악몽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오일쇼크 당시처럼 성장이 주저앉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함께 재연될 것이란 분석도 쏟아진다. 지금처럼 1년에 걸쳐 유가가 무려 두 배 뛰었던 1990년, 2000년, 2008년 모두 글로벌 경제에 쓰나미가 몰아쳤다는 과거 사례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고음이다.
6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상대로 결국 원유 수출 금지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확인되자마자,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39달러대까지 치솟아 장중 상승폭이 한때 18%에 달했다. 68달러대였던 1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오른 수준이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역시 1년 전 63달러대에서 이날 장중 한때 130달러를 넘어섰다.
그동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에너지 금수’가 빠진 대러 제재는 구멍이 숭숭 뚫린 조치(시사지 타임)"라는 지적에도 에너지 제재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러시아에 타격을 주는 것만큼 미국과 동맹국들이 입을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 2위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는 전 세계 수출량의 11%를 담당하고 있다. 자칫 에너지 제재 과정에서 국제 유가와 각국 기름값만 폭등시킬 것이란 우려도 잇따랐다. 이미 40년 만에 최고 수준인 인플레이션으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로선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러시아를 상대로 괜한 강수를 둘 필요가 없었던 셈이었다. 천연가스 수입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잇따른 제재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를 막지 못하자, 결국 러시아산 원유 수출을 막는 방안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스의 스콧 셰필드 대표는 "러시아가 스스로 전쟁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길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협상에 어깃장을 놓은 것도 국제유가 급등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 앞서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제재를 풀어주지 않으면 이란 핵합의를 엎을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다. 다만 RBC 캐피털의 헬리마 크로프트 애널리스트는 "일부에선 이란 핵합의가 치솟는 국제유가를 낮출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이 또한 러시아발 혼란을 메우기엔 너무 작은 규모"라고 지적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이선 해리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 원유 수출 500만배럴이 중단되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로 올라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정보업체 IHS마킷의 대니얼 예긴 부회장은 중동 산유국이 미국과 서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원유 공급을 끊어 1차 오일쇼크를 일으킨 1973년, 이란 혁명의 여파로 유가가 급등했던 1978년 등을 언급하며 "‘3차 오일쇼크’로 불릴 만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더딘 경제 회복과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에너지 쇼크는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쳐 직격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데이터트랙 리서치의 니콜라스 콜라스 공동창업자는 투자자 노트를 통해 "역사적으로 유가가 1년간 두 배로 뛰었던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이후 경기침체가 머지않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다. BoA의 글로벌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내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애널리스트의 비율은 30%로 높아졌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기고문을 통해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크다"며 "이는 중앙은행에는 악몽같은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을 가속화해야 하지만 19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 속도를 늦출 것"이라면서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각종 부양책을 통해 탄약을 쏟아부은 각국 정부도 재정 정책에 의존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