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기자
"이번 주에만 수익 2000만원 정도 냈습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되는 유튜브 광고에 한 남성이 나와 가상화폐 차트만 띄어놓고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가상화폐 선물 자동매매프로그램을 돌려놓으면 한 달에만 수익 8000만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30가지 매매기법을 인공지능(AI)에 넣어놨다"며 "인간의 감정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냉철하게 투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210만회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업체가 자동매매프로그램의 설정을 제공할 경우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으로 볼 여지가 크며 금융당국의 감시 체계 아래에 없으면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12일 유튜브의 주식과 가상화폐 자동매매프로그램 광고를 모니터링한 결과, 기자가 파악한 자동매매프로그램 업체에서 올린 광고 동영상만 1000여개나 됐다. 내용은 돈만 투자하면 AI가 알아서 돈을 벌어준다는 게 광고 내용이다.
한 자동매매프로그램 판매 업체는 유튜브에 광고성 영상만 298개를 올릴 정도로 활발하게 홍보했다. 홍보 내용은 대부분 AI가 찾아준 종목이 고수익을 냈다는 것이다. 한 영상의 출연자는 "종목 선정하기도 쉽지 않고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될 때마다 일상생활이 어렵다"며 "인간의 감정을 배제한 AI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주식의 경우 자동매매프로그램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일정 요건을 갖춰야만 판매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구현주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는 “판단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종목을 고르거나 매수 및 매도의 방식도 자동매매프로그램업체가 정하는 등 투자판단을 제공한다면 투자일임업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투자자가 직접 매매종목, 수량, 가격 및 시기 등 조건을 직접 설정할 경우엔 투자자문업이나 투자일임업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유튜브 광고에 나오는 자동매매프로그램 판매 업체들은 알고리즘으로 매수 종목을 추천하거나 매수 및 매도 시기를 설정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동매매프로그램 판매 업체들의 대부분은 금융당국에 투자자문업이나 투자일임업이 아닌 소프트웨어 업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유튜브 영상에서는 가상화폐 선물 자동매매프로그램을 광고했다. 하지만 많은 이용자들이 작게는 100만원, 크게는 몇 억원까지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가상화폐 역시 자동매매프로그램으로 수익 실현을 해준다는 광고성 영상이 검색됐다. 가상화폐 시장의 변동성이 큰 데다 투자자의 불안함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반영되기 때문에 자동매매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게 영상의 주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이용자들은 이 가상화폐 선물 자동매매프로그램을 활용할 경우 10분도 채 되지 않아 투자금액이 모두 손실이 나 청산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김모씨(38세·여성)는 “총 400만원을 투자했는데 순식간에 청산됐다”며 “30가지 매매기법을 섞어놨다고 하지만 마틴게일 기법이라고 해 도박장에서 활용되는 매매 방식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금액도 백만원부터 시작해 몇 억원대까지 상당했다.
실제로 사기행위의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해당 자동매매프로그램 업체의 홈페이지 서버 주소를 검색할 경우 미국 캔자스주의 체니 저수지 한 가운데가 잡혔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려는 정황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영상을 여러 번 바꿔가거나 지적하는 댓글을 삭제하며 여론을 관리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정모씨(44세·남성)는 “지적하는 댓글은 모두 가려지고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문의하거나 수익을 인증하는 댓글만 남는다”며 “이전에도 700만 조회수가 넘는 영상에서 이런 행위를 반복한 바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자동매매프로그램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가 아직 제도권에 포함되지 않아 투자자문과 관련 프로그램 자체가 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공인을 받고 가상화폐 투자를 자문하거나 관련 자동매매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며 "대부분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