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코스피가 전날보다 53.86포인트(1.82%) 급락한 2908.31에 마감한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해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김모씨(29)는 최근 코스피 하락의 여파로 큰 손실을 봤다. 한때 투자로 자산을 증식해 '조기 은퇴'까지 꿈꿨다는 김씨는 "폭락장을 수차례 얻어맞고 나니까 자신감이 사라졌다"며 "요즘 계속 주식 차트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생업도 잘 안 되고, 이쯤에서 빠져야 하는 건지 고민된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전세계적 물가 급증, 미국 양적완화 축소 전망 등 대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증시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이후 첫 폭락장을 경험하는 2030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마이너스 통장 등 대출을 통해 투자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어, 증시 불안이 본격화할 경우 자칫 청년층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는 금융 시장이 불안정한 시기일수록 고위험 투자는 회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5일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57.01포인트(1.89%) 떨어진 2962.17로 마감, 지난 3월 이후 약 6개월 만에 처음으로 3000선이 무너졌다. 앞서 지난달 28일 3100선이 붕괴된 지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후로도 코스피는 2950대에서 횡보하며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코스피의 부진은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으로 인해 미국·유럽의 인플레이션이 급증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또한 양적 완화 규모를 축소하는 테이퍼링을 예고하고 나섰다. 여기에 더해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恒大) 그룹'의 파산 위기설이 제기된 것도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와 관련, 미국 금융 전문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금융가에서 향후 몇주, 혹은 몇개월 간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며 "시장의 과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주기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투자 열풍에 휩쓸려 주식 계좌를 열었던 이른바 '주린이(주식+어린이)' 2030 세대도 흔들리고 있다.
앞서 이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코스피가 1500대까지 내려앉았던 지난해 3월부터 증시에 대거 유입된 바 있다. 소위 '바이 더 딥(Buy the dip·저가 매수)' 전략이었다.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국내 주식거래 활동 계좌 수는 최초로 3000만개를 돌파했으며, 일부 증권사는 지난해 2월부터 3월까지 늘어난 신규 계좌 가운데 약 60%를 2030 세대 고객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이후 코스피는 지난 1월 3200대까지 올라서는 등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저가에 매수했던 신규 투자자 중 상당수가 큰 이득을 본 셈이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외인 기관이 떠난 주식을 개인 투자자들이 매수하며 주가를 방어하고 있는 형세를 빗대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젊은 세대 중에는 '파이어(FIRE)족'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기도 했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라는 문장의 앞 글자를 따서 조합한 신조어로, 꾸준한 주식 투자로 자산을 증식해 40대에 조기 은퇴를 하는 직장인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달 말부터 증시가 불안정해지기 시작하자, '첫 폭락장 경험'을 맛본 젊은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6월 첫 주식 계좌를 열었다는 20대 직장인 A 씨는 "국내보다는 해외 투자를 주로 하는데, 폭락장에서 한번에 100만원 이상을 잃고 나니까 겁이 덜컥 나더라"라며 "남은 주식은 전부 현금화하고 지금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B(31) 씨는 "한번 폭락장을 경험하고 나니까 '장투(장기 투자)'도 마음 먹은 대로 안 된다. 자꾸 차트를 열어 보고 주식에 신경 쓰느라 일에 집중을 못 할 지경"이라며 "이대로 가다간 파이어족은 커녕 생활비도 빠듯하다"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투자 열풍 당시 일부 누리꾼들은 외인과 외국인이 빠져나간 증시를 개인 투자자가 매수하는 상황을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투자 열풍 이후 늘어난 부채 부담도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 소속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20대의 대출 잔액은 2조5787억원으로 집계됐다. 20대의 대출 금액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난해에만 5000억원 가까이 폭증하는 등 최근 가파르게 증가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등 열풍이 빚폭탄의 원인이 됐다는 시각이 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올해 초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이후 금융투자를 개시하거나 재개한 20대 연령층 비율은 전체 가운데 29%로, 30대(20.5%), 40대(20.2%), 50대(12.6%)보다 높았다.
사회 초년생 특성상 20대는 중장년층에 비해 소득이 낳고, 쌓아둔 자산도 부족하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청년층의 소득 대비 부채 비중(LTI) 상승률은 약 24%로, 다른 세대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버는 돈에 비해 빚부담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전문가는 높은 부채로 인해 청년들이 생활고를 겪을 위험이 있다며, 고위험 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제로 빚투, 영끌 등 고위험 투자가 인기를 끌면서 20대 청년층의 부채 위험이 커진 측면이 있다. 코로나19로 노동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자본소득을 얻기 위한 투자로 몰리다 보니 생긴 일"이라며 "이런 상황에 앞으로 증시까지 계속 불안정하면 젊은 세대부터 큰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런 환경에서는 고위험 고수익을 쫓기보다는 현명한 투자를 해야 한다"라며 "자본투자는 자신의 여유 자금을 가지고 하는 게 좋고, 빚을 내서 무리하게 투자를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