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안주려고?…'11개월 꼼수 계약'에 취준생·단기직 '시름'

퇴직금 제도 허점 노린 '쪼개기 계약'에 '한숨'
전문가 "퇴직금 제도 악용, 노동자에 큰 피해"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12개월에 못 미치는 이른바 '꼼수 계약'을 하는 고용주로 인해 노동자들의 고충이 늘고 있다. 사진= 기사내용과 관련없음.(게티이미지뱅크)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퇴직금 꼼수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 "좀 강력하게 처벌하면 좋겠어요."

경기 불황과 코로나19 사태 등 영향으로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구직자의 시름이 어느 때보다도 깊은 요즘, 정작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도 이들의 고충이 줄지 않고 있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12개월에 못 미치는 이른바 '꼼수 계약'을 하는 고용주가 많아서다.

주로 근로 기간을 '11개월 계약' 또는 1년보다 조금 부족하게 계약해 퇴직금 지급 기준을 피하는 방식이다. 아르바이트(알바)는 물론 심지어 공공기관에서도 1년 미만 계약이 관행처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당장 일자리가 급한 구직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퇴직금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퇴직금은 근로자에게 지급되지 않았던 임금을 퇴직 시 사후적으로 지급하는 근로조건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4월 고은실 제주도의회 의원실(정의당)이 제주 도내 43개 읍면동 기간제 근로자 계약 현황을 분석한 결과, 근로계약서에 꼼수를 부린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근로기간을 1년보다 3~7일 정도 부족하게 계약하는 식으로 퇴직금 지급 기준에 미달하도록 했다. 일부 읍면동에서는 한 근로자와 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일하는 것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가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기존 계약을 해지, 12월 중순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재계약하기도 했다.

지급 기준도 읍면동마다 제각각이었다. 1월2일부터 12월31일까지 동일한 계약으로 근로를 마친 근로자도 일부 읍면동은 퇴직금을 지급하고, 일부는 365일에서 하루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상시고용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해 5개월, 6개월, 11개월 등 월 단위로 나눠 계약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도 다수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꼼수계약' 관련 불만을 토로하는 게시글./사진=트위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꼼수 계약을 체결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키워드만 검색해도 11개월 계약 혹은 쪼개기 계약으로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례를 다수 발견할 수 있다.

서울의 한 직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30대 A씨는 "취업준비생일 때 당장 다음 달 생활비도 없어 11개월 계약이어도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의 제기를 하면 인사에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러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항상 언제 잘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껴야 하고, 잘려도 다른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지낼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니까 그냥 다니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관행이 정말 환멸 나지만 문제는 여길 그만둬도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퇴직금 관련 꼼수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국회에서도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없지는 않았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5월 1년 미만 근로자(4주 미만 근로자 제외)에 대해서도 퇴직금을 지급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쪼깨기알바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1년 미만과 1주간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노동자에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항목을 바꿔 계속근로기간이 4주 미만인 노동자를 제외한 모든 노동자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이다.

자료사진. 지난 4월 고은실 제주도의회 의원실(정의당)이 제주 도내 43개 읍면동 기간제 근로자 계약 현황을 분석한 결과, 근로계약 꼼수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 같은 법에 대해 고용주는 반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이 악화하는 등 매출이 감소한 상황에서 단기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까지 챙겨주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최저 시급도 크게 오른 상황에서 퇴직금까지 주면 남는 게 없다", "고용주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등 퇴직금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문가는 노동자가 일할 의지가 있고 사업장도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단기 계약을 맺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효신 노무사(소나무노동법률사무소)는 "퇴직금은 근로자에게 지급되지 않았던 임금을 퇴직 시 사후적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근로조건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라며 "단지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11개월 등 꼼수 계약을 맺는 것은 근로자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법을 준수해야 할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예산 문제인 것으로 보이는데, 단기 업무와 장기 업무를 확실히 구분해 예산을 배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자영업자의 경우 근로자의 월급 외 총지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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