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협력·IOC가맹 이끈 서윤복 우승메달 문화재 된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미코 피타넨 제치고 우승
영화 '보스턴 1947' 만들어졌을 만큼 참가 과정 드라마틱
스포츠가 외교관 수십 명 이상의 힘 발휘한다는 사실 인식시켜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

1947년 4월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1923~2017)은 경기 중반 선두 그룹에 합류했다. 핀란드의 미코 피타넨과 한참 앞다투며 달리자 심장 파열의 언덕이라는 고개가 나타났다. 외길 코스의 3분의 2 정도를 달려 지친 상태에서 많은 선수가 기권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서윤복에게는 환희의 고개였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현저동이란 고개와 고개 사이의 바닥 동네란 뜻이다. 인왕산과 안산 사이에 의주로가 나 있어 개성과 평양으로 통했다. 어린 시절 서윤복에게 인왕산과 안산은 하루에 몇 번씩 뛰어 올라간 놀이터였다. 산 오르기를 밥 먹듯 해 육상 선수가 되고 언덕을 만나 괴로워한 적이 없다.

서윤복은 단숨에 앞장서 거리 차를 벌렸다. 내리막길에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달려들어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졌지만 금세 일어서 보스턴 시가지에 선두로 들어섰다.

서윤복이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받은 메달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광복 뒤 처음으로 ‘KOREA’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메달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3일 전했다. 한 달간 각계의 의견 수렴 및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를 확정한다. 문화재청 측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미 군정 시기의 어려운 여건에서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의 역량을 세계에 알려 매우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은 강제규 감독이 영화 ‘보스턴 1947’을 만들었을 만큼 드라마틱하다. 그는 군정청 미국인들의 미화 갹출로 어렵게 여비를 마련해 손기정 감독, 남승룡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군용기에 올랐다.

그들은 일본 아츠기 공군기지를 거쳐 당도한 미국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들어가지 못할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소지했던 군정청 발행의 여행 증명서가 태평양 중간에 남북으로 그려진 일부 변경선의 서쪽, 다시 말해 맥아더의 태평양 점령군 사령부 영역에서만 통했기 때문이다. 서윤복은 호놀룰루에 사는 한국인 목사의 도움으로 뒤늦게 새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12시간여의 비행으로 샌프란시스코 군용 비행장에 도착했다. 이어 한국에 주둔했던 미 육군 중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보스턴까지 당도했다.

김구 선생은 서윤복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에 감동해 경교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족패천하(足覇天下)'라는 휘호를 써주었다. 왼쪽부터 손기정, 서윤복, 김구, 남승룡.

당시 뉴욕에서는 조병옥, 장면, 임영신 등 한국 정계의 거물들이 남한 독립을 유엔의 힘으로 이루려는 외교활동에 나서고 있었다. 소련 대표들이 방해 공작을 펴고 있어 뜻은 쉽사리 실현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 호텔에서 서육복 축승회를 개최해 세계 각국에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었다. 에이버리 브런디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으로부터 IOC 가맹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 두 달 뒤 정식회원국으로 승인됐다. 이듬해 런던올림픽과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며 스포츠가 외교관 수십 명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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