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요즘 등산하러 온 사람들, 정말 등산만”...新등산 풍속도

코로나19로 변한 등산문화...해돋이객부터 등린이까지
지난해 11월 국립공원 탐방객 22.2% 감소...북한산은 4.8% 줄어
하산길 식당 한산

[아시아경제 이준형 기자] “해돋이 장사가 대목이라 매년 떡국을 준비한다. 지난해에는 없어서 못 팔았는데, 어제는 한 그릇 팔았다.”

지난 2일 오전 11시30분 관악향교 방면 관악산 출입구 부근 골목. 식당 ‘돌담집’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떡국’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은 창문을 들여다보니,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기자가 문을 두드리자 나온 사장 최모(63)씨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고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최근 등산객 수는 예년과 비교해도 평이한 수준”이라며 “그런데 (등산객들이) 하산하며 식당을 들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2일 관악향교 방면 관악산 출입구 골목에 위치한 식당 ‘돌담집.’ 작년 같았으면 하산객들로 붐볐을 시간에 매장이 텅 비어있다. [사진 = 이준형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등산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등산객들은 입산이 통제된 새해 첫날 대신 다음날을 택해 해돋이를 보러 왔고, 하산 후에는 근처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곧바로 귀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실내 체육시설이 폐쇄되자 산으로 향한 ‘등린이(등산+어린이)’들도 있었다.

해돋이객과 ‘등린이’로 사람 적지 않아

신축년 첫 주말을 맞은 관악산은 예년에 비해 한산한 분위기였다. 다만 새해 해돋이를 보러 온 시민들을 등산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해맞이객 입산이 통제되자 다음날 산을 찾은 이들이었다. 이날 등산객들은 “사람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다”고 입을 모았다.

해돋이를 보러 왔다는 김모(38)씨는 “어제 일출 시간에 입장을 통제한다고 들어 오늘 새해 일출을 봤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걱정을 좀 했는데 생각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과천에 살아 매주 1~2번은 이곳에 온다는 오상권(57)씨는 “신년을 맞아 목표와 계획을 세우려 왔다”면서 “원래 날이 추운 겨울 주말은 사람이 이 정도”라고 했다.

같은 날 관악산 정상 연주대. 새해 첫 주말을 맞아 산행에 나선 시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이준형 기자]

실내 체육의 대체재로 등산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난해 10~11월을 등산을 시작한 시기로 꼽았다. 실제 코로나19 확산 후 젊은층 사이에서 등산이 새로운 취미로 부상하며 ‘등린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해시태그를 살펴보면 ‘등산’이 약 331만건, ‘등산스타그램’이 약 62만건에 달한다.

본래 요가와 필라테스를 했다는 송모(34)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요가원을 이용하기 힘들어 다른 운동을 알아봤다”면서 “산은 야외고, 마스크를 착용하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선택했다”고 밝혔다. 산 정상에서 만난 한모(37)씨는 “수영을 했는데 2.5단계 때부터 갈 곳이 없어 등산을 시작했다”면서 “생각보다 좋아 2주에 1~2번꼴로 산을 찾는다”고 말했다.

도심 근교 산, '등산 객 그런대로 선방' 반면 '식당은 울상'

이처럼 도심 내 주요 산을 방문하는 이들은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국립공원 탐방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2% 줄었지만, 서울·수도권에 위치한 북한산은 4.8% 감소한 것에 불과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야외활동이 급감했음에도 선방한 셈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북한산은 단체 산행이 아닌 개인 등산객도 접근이 용이한 곳”이라며 “젊은 탐방객이 늘었고, 야외인 산은 보다 안전하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등산객들을 위한 관악산 내 벤치.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벤치 일부에서의 휴식을 막아놓았다. [사진 = 이준형 기자]

반면 하산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식당들은 울상이었다. 이날 정오쯤 과천향교 방면 골목의 한 식당에는 두 팀이 앉아 있었다. 인근의 또 다른 식당 ‘향교집’을 운영하는 조모(60)씨는 “요즘 등산하러 온 사람들은 정말 등산만 하고 간다”고 덧붙였다.

주변 상인들이 특수를 누리지 못하는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감염 우려로 많은 등산객들이 외식을 꺼리는 탓이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산을 찾았다는 서영은(69)씨는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나왔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산행을 마치면 바로 귀가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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