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원인 넉달간 '1'도 못 건진 정부

3월말 발표계획 6월로 미뤄져…관련 기업 전국 1490곳 중 500곳 가동 중단에 도산 위기

올 1월 21일 오전 울산시 남구 대성산업가스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불이 나 건물 밖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세종=아시아경제 이광호·주상돈 기자] 에너지저장장치(ESS) 가동 중단으로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반토막나는 등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의 원인 규명은 오리무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부터 민관 합동 ESS 화재 사고 원인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하고 있지만 넉 달 동안 단 한 건의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다. 3월 말로 예정됐던 발표 계획은 오는 6월로 늦춰진 상태다.

산업부 관계자는 26일 "현재 조사위원회가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ㆍ분석을 마치고 분석결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시험ㆍ실증을 진행 중"이라며 "상반기 중 사고 원인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ESS 안전 대책과 생태계 육성 방안을 함께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ESS 시설에서 연이어 화재가 발생하자 지난해 12월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다중이용시설 등에 설치된 ESS의 가동 중단을 권고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ESS 1490개 가운데 현재 500여개가 가동 중단된 상태다. 산업부는 민관 전문가 19명으로 구성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화재 원인을 분석하고 있지만 아직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늑장에 ESS 관련 기업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존폐 위기를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ESS시장은 배터리를 제외하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섞여 있는 시장으로 중소기업이 ESS 업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ESS의 핵심 부품을 미리 구비하고, 인력까지 충원했지만 신규 발주가 없어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는 등 도산 위기"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대기업은 어떻게든 버틸지 몰라도 중소기업은 하루가 힘들다"며 "하루 빨리 정부의 ESS 관련 대책이 발표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신규 발주는 올해 들어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도 발목이 잡혔다. ESS 안정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40년까지 30~35%까지 확대하겠다는 정부 목표는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SS는 태양광ㆍ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에 내보내는 장치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필수다. 현재 재생에너지 비중은 7~8%에 머물러 있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선진국들의 경우 최근 발전비중이 늘어나면서 ESS에 대해 관심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당장은 필수설비는 아니지만 태양광ㆍ풍력이 확산됐을 경우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신재생에너지 확산에 대비해 ESS에 대한 기술개발과 이에 따른 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1㎿h 용량의 ESS 1대 설치비용은 7억원을 넘는다. 그는 "현재 8% 남짓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5% 이상 되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해 ESS가 필요해진다"며 "이 때까지 10년 정도 남은 셈인데 이 기간 동안 기술개발을 통해 ESS의 안정성과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ESS 안전 문제는 신기술의 안정화 측면에서 신속하게 극복해야 할 문제"라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제시한 장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 달성 여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업계와 긴밀히 협의해 대안을 마련하고, 재생에너지 간헐성 보완 수단으로서 ESS 활용이 확대되고 ESS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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