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핫플레이스] 고희동 가옥 - 최초의 서양화가가 구현한 ‘살롱’

서양화가 고희동이 일본 유학 후 직접 설계해 지은 가옥
당대 예술가들 모여든 ‘살롱’이자 3대가 함께 산 전통 한옥

[한국의 골목길] 원서동 길_고희동 가옥./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원서동 돌담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 보면 양 갈래 길이 나눠진 곳 왼편,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화백이 살았던 가옥이 우뚝 서 있는데요 당초 일반에 매각돼 헐릴 위기에 처했던 것을 서울시가 매입해 복원한 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 고희동 이란 인물은 생소하나 그가 그린 우리나라 최초의 유화작품 ‘자화상’을 보고 나면 “아~” 하고 이내 알아챌 만큼 자신의 뚜렷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기념비적 작가입니다. 과감하게 웃옷 앞섶을 풀어헤치고 부채를 흔드는 콧수염 진한 남성의 풍모는 작가 스스로를 과감하게 대중에게 내놓는 파격이자 자신감으로 당시 화단에서 큰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고희동 화백이 1915년 발표한 '부채를 든 자화상'.

고희동 화백은 본래 역관이었던 부친을 따라 한성 법어학교를 나와 예식관으로 재직했던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림을 향한 열정을 애써 억눌러왔던 그는 결국 안정된 미래를 박차고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로 관비 유학길에 올라 귀국 후엔 독특한 화풍을 선보인 최초의 서양화가로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한국의 골목길] 원서동 길_고희동 가옥./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서동 고희동 가옥은 그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15년 직접 설계하고 이후 41년간 기거했던 저택으로 건축학적 특성과 더불어 최초의 서양화가와 그 지기들이 모여 그림 품평과 친목을 도모한 ‘살롱’으로서의 의미가 깃들어 더욱 특별한 근대건축유산으로 손꼽히는 공간입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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