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신길동 일대 전경(사진=영등포구청)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서울 여의도에서 작은 샛강 하나만 건너면 시작되는 동네인 신길동. 최근 신길뉴타운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대대적으로 정비되고 있지만 수년전만해도 여의도와 대비해 상당히 낙후된 동네로 알려졌던 곳이다. 여의도로 가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모든 물가가 3배 뛴다고 할 정도로 격차가 있었고, 1990년대까지는 달동네들도 많아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지역으로 인식돼있었다.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말 목장이었던 여의도에 비해 훨씬 큰 마을이었다. 당시엔 영등포의 중심이 되는 마을이었다고 전해진다. 영등포(永登浦)란 이름 자체가 오늘날 신길동 샛강 근처에 있는 방아곶이 나루터에서 행하던 '영등굿'에서 왔다는 전승이 있기 때문이다. 영등굿은 꽃샘추위와 함께 오곡의 풍요를 가져와 준다는 영등신에게 하는 굿이다.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라 교통의 요지였던 신길동에서 인근 지역주민들이 모여 굿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늘 새롭게 좋은 일이 생기는 곳이란 의미에서 붙여진 '신길(新吉)'이란 지명도 여기서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원래는 한강 주요 포구로 시흥군 신길리에 속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총독부의 경성부 구역확장에 따라 영등포구 신길정으로 편입됐고, 광복 직후인 1946년, 신길동이란 동명을 얻어 오늘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에 특이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오늘날 영등포여고 정문 옆 고개인 밤고지고개와 얽힌 설화다. 이곳은 동네 전통 신을 모시던 부군당(府君堂)이 있어 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금기시했는데, 일본인들이 이를 어기고 상여를 끌고 가다가 이틀간 움직이지 않아 발이 묶였다는 얘기다.이처럼 여러모로 전통신앙과 얽힌 촌락이던 신길동은 해방 후 오랫동안 군인동네로 불렸다. 용산에 있는 국방부와 가까워 공군과 해군본부를 비롯해 여러 군시설이 존재했다. 지금도 공군회관, 해군회관, 서울지방병무청, 군인아파트 등이 남아있다. 1990년대 군시설들이 이전한 이후로는 대체로 집값이 비싼 여의도 지역에 출퇴근하는 주민들이 사는 일종의 베드타운 개념의 동네가 됐고, 주요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속했다.하지만 신길뉴타운 개발 호재와 맞물려 지금은 부동산시장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미 '신길뉴타운 한화꿈에그린', '래미안 프레비뉴', '래미안에스티움' 등이 입주했고 다음달 중 신길뉴타운 8구역에서 '신길파크자이'가 공급된다. 신길3구역의 정비사업도 진행 중이다.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