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없으면 로봇으로 꽃가루 수정한다, 일본의 '로봇 드론 벌'

벌의 가치는 꿀이 아닌 수분(受粉)에 있어… 질병으로 국내 토종벌은 멸종위기 직면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가 꿀벌 개체 감소에 따른 피해를 줄이고 꿀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로봇 드론 벌'을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 = 에이지로 미야코 박사 연구팀

인류멸망을 두고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곧 멸망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사실 그가 남긴 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 생태계 붕괴가 곧장 자연재해의 전조로 해석되면서 오랫동안 벌의 생태계는 인류의 관심 대상이었다.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토종벌 에이즈’ 낭충봉아부패병 방역에 양봉 농가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벌을 대신할 ‘로봇 드론 벌’이 일본에서 개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초소형 드론의 몸통부에 말털을 부착한 뒤, 털 끝에 이온 액체 젤을 코팅해 꽃가루를 흡착해 다른 꽃으로 옮겨가 수정을 돕는 소형 드론 벌의 개발은 향후 꿀벌의 역할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 = 미야코 에이지로 박사 연구팀

줄어드는 벌, 로봇으로 대체?최근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 전역에서 꿀벌의 군집붕괴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꿀벌의 개체수가 줄어들었는데, 이로 인해 꽃의 수정이 줄어들어 큰 타격을 입은 농가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작물 수확문제 해결을 목표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된 가운데 지난 2월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의 연구진들이 ‘인공 꽃가루 매개자’ 역할을 하는 로봇드론을 내놓아 관심이 집중됐다.

로봇드론벌이 실제 백합의 꽃가루를 다른 개체로 옮기는 과정을 시연하는 모습. 사진 = 미야코 에이지로 박사 연구팀

말 털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드론벌‘재료공학으로 만든 인공 꽃가루 매개자’ 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지 'Chem'에 지난 2월 논문을 발표한 AIST의 에이지로 미야코 박사 연구팀은 실제 벌의 털에 꽃가루가 묻는 점에 착안, 드론의 몸통 부분에 말의 털을 입힌 뒤 털끝에 이온 액체 젤을 코팅해 수분을 빨아들여 흡착되는 효과를 유도하는 실험 내용을 공개했다. 과거 전기가 통하는 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패작으로 생성된 이온젤이 수년 째 점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발견한 연구팀은 이 젤을 통해 벌의 털이 갖는 흡착성을 재현하며 성공적으로 꽃을 수정시킬 수 있었다. 연구팀은 실험에 백합을 이용했는데, 하나의 꽃잎에서 흡수한 꽃가루를 다른 백합에 인공수정하는 데 성공하며 꿀벌 개체 감소로 인한 농가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꿀벌이 꿀 채취를 위해 매화꽃 주변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 = 아시아경제 DB

토종벌의 죽음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에 힘입어 다양한 로봇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인간을 대체하는 휴머노이드는 나오지 못한 상황. 꿀벌 역시 로봇드론벌이 수정의 역할을 일부 대신할 순 있겠지만 벌만이 할 수 있는 생태효과를 재현하진 못한다. 최근 다시 확산되고 있는 ‘낭충봉아부패병’은 단 1마리의 애벌레가 감염된 순간 벌 10만 마리를 감염시킬 정도로 위협적인 질병으로 지난 2009년 국내에서 첫 발생 후 지난해까지 매년 평균 60농가에 피해를 입히며 국내 토종벌의 98%를 멸종시켰다.

'낭충봉아부패병' 화형식에서 한 농민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벌통에 불을 붙이고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정부는 낭충봉아부패병의 급속한 확산으로 토종벌이 멸종위기에 처하자 지난 2010년 전담반을 만들고 2015년까지 토종벌 32만군의 복원을 약속했으나 관련부처 간 업무중첩으로 대책마련이 거푸 지연된 상태다. 토종벌의 떼죽음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웃나라 일본의 ‘로봇드론벌’ 개발소식은 그간 꿀, 밀랍 생산과 같은 벌 제품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등한시 해온 꿀벌의 종자 및 식량작물 수분(受粉) 역할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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