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시청사에서 70대 전직 재개발추진위원장이 자해 소동을 벌인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24일 서울시청사에서 발생한 70대 전직 재개발추진위원장의 자해 사건을 놓고 '비뚤어진 욕망의 황당한 심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사건은 당일 오전 10시쯤 서울시청에서 열린 '34번째 푸른 눈의 민족대표 프랭크 스코필드 특별전' 개막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축사를 시작한 직후 발생했다. 이모(79)씨(전직 서울 성북구 삼선3구역 재개발추진위원장)이 술에 취한 채 횡설수설하며 박 시장을 향해 다가가더니 돌연 칼로 자신의 배를 찔렀다. 이씨는 오전10시15분쯤 긴급 출동한 119구급차에 의해 병원이 이송됐지만 10cm의 자상만 입었을 뿐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서울시 안팎을 경악케 했다. 가뜩이나 요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둘러 싼 사회적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백색 테러'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자칫 칼날이 박 시장을 향했을 경우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일단 이씨가 자해 소동을 벌인 이유는 탄핵 정국을 둘러 싼 갈등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씨는 삼선3구역 재개발추진위원장을 맡았다가 2015년 10월 직권해제되면서 자치구가 지급한 사용비용 보조금 액수에 불만을 품고 시와 성북구 측에 민원을 제기해왔다. 이날도 시청 재생협력과를 방문해 민원을 제기하려다 1층 로비에서 열리던 행사를 보고 돌발적으로 자해 소동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씨가 사건을 일으킨 배경에는 이명박ㆍ오세훈 시장 시절 추진된 이른바 뉴타운 사업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는 게 서울시 안팎의 분석이다. 이ㆍ오 전 시장은 서울에 수백개의 뉴타운사업을 공약했고, 수많은 서울시민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2008년 총선 때엔 국회의원 후보들마저 이에 편승해 '뉴타운 지정'을 대거 공약해 당선됐다. 이른바 '탄돌이'에 이어 '뉴타운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불황으로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대부분의 사업이 추진 불가능해졌다. 빚을 내서 사업비를 조달한 조합들은 빚에 시달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빚은 늘어났고, 사업 재개의 가능성도 옅어졌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신규 건축 불가 등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했다. 흥청망청 돈을 쓰다 비리로 구속되는 조합장ㆍ간부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살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2011년 박 시장이 취임한 뒤 서울시가 나서면서 사태가 수습되기 시작했다. 박 시장은 뉴타운 정책을 전면 수정해 630여개의 재개발구역에 대한 실태 조사 후 주민 반대가 많거나 사업이 불가능해진 곳에 대해선 사업비 일부를 보조해주고 직권으로 지구 해제ㆍ조합 해산을 하도록 했다. 국민 세금으로 사적인 '매몰비용'을 보전해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안팎의 반대를 무릅쓴 결단이었다. 무분별한 뉴타운사업 추진이 비록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추진됐다고 하더라도 이를 부추긴 정치권ㆍ지자체의 책임도 있고, 영세 가옥주ㆍ상인ㆍ세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당하는 불이익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처럼 이씨의 자해 소동은 정작 정책 실패의 주체인 이·오 전 시장이 아니라 잘못을 확인하고 바로 잡겠다고 나선 박 시장을 향해 책임을 추궁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녁을 잘못 찾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이날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계 정에 글을 올려 '비뚤어진 욕망의 황당한 심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뉴타운 사업으로 떼돈 벌게 해주겠다고 사기친 건 이명박과 오세훈이다. 그 사기에 속아 금방 떼돈이 들어올 줄 알고 빚내서 흥청망청 쓰다가 자승자박 상태가 된 사람들이 정말 많다"며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에게 사기 친 이명박과 오세훈은 놔두고 빚 갚는 걸 도와주는 박원순을 원망하고 비난한다"고 비판했다. 전씨는 이어 "우리는 왜 진짜 자기에게 해를 입힌 죄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걸까? 왜 일을 저지른 자들은 놔두고 수습하는 사람만 욕하는 걸까?"라며 "그건 아마도, 우리의 '욕망'이 우리에게 사기 친 자들의 '욕망'과 똑같기 때문일 것이다. 이익은 독점하고 손실은 공유하려는 게, 과연 정당한 '자본주의적 욕망'일까"라고 반문했다. 전씨는 특히 "우리 '욕망' 안에 자리 잡은 사기꾼의 속성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한, 이런 황당한 '심판'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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