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쥐락펴락'…면세戰 승자는 외국계 명품

동화면세점, 루이뷔통 철수로 추가 이탈 우려 에르메스 들어선 롯데월드타워점 첫날 8000명 몰려두산·한화, 유치실패로 시장 조기안착 못해

지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내 화장품 매장이 텅 비어있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이른바 '명품'이라 불리는 고가의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국내 면세업계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국내 면세업체 및 매장 수를 급속도로 늘리는 과정에서 엉뚱하게 외국계 브랜드가 시장을 쥐락펴락 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 루이뷔통은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매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1991년 입점 이후 26년 만의 결별이다. 현재 루이뷔통 매장이 있던 자리에서는 시계브랜드 로렉스 매장과 고객 라운지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동화면세점 관계자는 "루이뷔통은 지난해 말 입점 계약이 종료되면서 올해 1월1일자로 폐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롯데관광개발의 주요 계열사인 동화면세점은 197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내면세점 특허를 취득했다. 자본 규모 등을 기준으로 중소ㆍ중견 사업자로 분류되지만 루이뷔통을 비롯한 샤넬, 에르메스 등 '3대 명품' 유치에 성공하며 이제껏 큰 무리 없이 영업해왔다. 2015년 기준 매출 규모는 3226억원으로 같은 해 대기업 계열로 운영되던 워커힐면세점(SK네트웍스, 2874억원)보다 많았다. 96억원 가량의 순이익도 냈다.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의 기존 루이뷔통 매장이 폐점하고 그 자리에 시계 브랜드 및 고객 라운지 공사가 진행중이다. 가림막 앞에서는 고객들이 쇼핑을 하지 않고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입지가 급속도로 좁아졌다. 명동(신세계), 종로(하나투어), 동대문(두산) 등 인근 지역에 신규 면세점이 들어선 데 이어 루이뷔통의 철수로 기타 럭셔리 브랜드의 추가 이탈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송객수수료 지불 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동화면세점은 중국인관광객(요우커)보다는 구매력이 낮은 동남아시아계열 단체관광객 유치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면세점을 방문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기 보다는 바닥이나 복도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지난 5일 재영업을 시작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오픈 첫 날부터 에르메스 매장의 문을 열었다. 이 날만 단체관광객 5000명을 포함한 8000여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다음주께는 루이뷔통 매장이, 이달 말에서 내달 초에는 샤넬 매장이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으로부터 특허장을 발급받은 당일 곧바로 영업에 나선 것 역시 이 같은 명품 브랜드 유치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난 5일 오픈을 앞둔 서울 잠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 업계의 관심사 중 하나도 서울 용산 HDC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루이뷔통 매장을 오픈하느냐다. 심사 단계에서의 화두가 투자 규모 및 사회공헌이었다면, 오픈 후에는 명품 유치로 관심이 옮겨갔다. 브랜드 협상 및 운영, 구매력 등 면세업체의 핵심 역량을 시장과 고객에게 증명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두산과 한화가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도 영업 1년이 되도록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명품 유치 실패의 탓이 크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본사의 운영 방침을 이유로 명품 브랜드들은 수수료 인하, 매장 확대, 비용 전가 등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일부 해외 화장품 브랜드가 면세점 매장 위치 및 규모를 두고 무리한 협상을 진행하다가 본사 직원들을 갑작스레 철수 시킨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브랜드 역시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오픈 매장을 저울질 할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비용을 수반하는 무리한 요구를 해도 항의하거나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면세점이 늘어나면서 각 사의 이익은 쪼그라들고 주도권은 완전히 명품에 넘겨주게 된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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