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아시아]'情' 대신 '仁'으로 중국인 마음 녹인 오리온

아시아경제는 온오프라인 통합 10주년을 맞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국력 제고를 위해 뛰는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산업통상자원부, KOTRA, 무역보험공사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중국 대(大)기획 시리즈 '우문현답, 다시 뛰는 산업역군'을 통해 드넓은 중국 대륙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산업역군의 치열한 삶의 목소리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합니다.<편집자주>뉴아시아-우문현답, 다시 뛰는 산업역군<9>오리온 광저우 공장'情' 대신 '仁'으로 중국인 마음 녹여한국 기업인줄 모를 만큼 현지화 철저광저우 공장, 中 3번째 생산 기지청정 공장 지향…미생물 특화 관리법 적용초코파이, 독보적 기술력 숨은 비법오! 감자, 年매출 2000억원 돌파…현지 판매 1위[광저우(중국)=아시아경제 김혜원 특파원] 오리온 '초코파이'는 올해로 마흔 두 살이다. 1974년 4월에 태어난 초코파이는 빵도 아니고 초콜릿도 아닌 것이 그야말로 난생 처음 맛 본 신상 과자였다. 우유 한잔을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든든할 만큼 고단백 식품으로 사랑 받았다. 때로는 군대 화장실에도 등장했고 급할 때는 축하의 정(情)을 나누는 케이크 대용으로 안성맞춤이다.이제는 제법 중년의 향기가 나는 초코파이는 42살 생일을 추억할 만한 멋진 선물을 받았다. 지금껏 전 세계에서 팔린 매출을 계산해 보니 올해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초코파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중국인의 입맛이 크게 한 몫을 했다. 초코파이는 중국에서 '좋은 친구'라는 뜻을 담은 '하오리요우파이(好麗友·派)'로 불리는데 지난해 기준 중국 누적 판매액만 1조3000억원을 넘어섰다.한중 수교 직후 1993년 베이징에 사무소를 열고 대륙에 첫발을 디딘 오리온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중국인들이 오리온이 한국 기업이라는 것 자체를 잘 모를 정도로 완벽한 현지화를 이뤄냈다는 평이 널리 퍼져 있다.

초코파이는 중국에서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리요우파이(好麗友ㆍ派)'로 판매하고 있다. 박스 포장 겉면에 '정(情)' 대신 '인(仁)'자를 넣은 게 눈에 띈다.

최근 찾아간 오리온 광저우 공장은 오리온이 중국에 세운 세 번째 생산 기지다. 1997년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 랑팡을 시작으로 중국 공략을 본격화한 오리온은 2002년 상하이에 공장을 설립했고 이후 2010년 광저우 생산 시설을 추가로 세우면서 남부 지역 점령에 나섰다.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초코파이지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조 공정을 낱낱이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부 공정에서는 미생물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어 위생 관리상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저우 공장을 한국 언론에 공개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박시명 하오리요우식품(광저우)유한공사 지원부문 팀장은 "생산 현장은 리스크 정도에 따라 그린, 옐로, 레드 존으로 구분해 관리한다"며 "오리온만의 특화된 미생물 세균 관리법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밀폐형 방진복을 입고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널찍한 미로가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초코파이뿐 아니라 '초코송이' '고래밥' '예감' '카스타드' '오! 감자' 등 주요 제품을 만드는데 제각각의 공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구역별로 나뉘어 있었다.오리온 하면 초코파이를 먼저 떠올리지만 중국에서 판매 1위는 오! 감자라는 사실. 특히 한국에는 없는 오! 감자 토마토 맛은 중국인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지난해 사상 최초로 단일 국가 연매출 2000억원 돌파 기록도 세웠다. 박 팀장은 "물량이 달려 반제품 설비 증설 작업을 하고 있다"며 "중국에서는 감자 분말을 넣어 만드는 제품의 인기가 독보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감자 스낵인 예감도 중국 내 판매 3위권에 든다.

중국에서 '야! 투도우'로 불티 나게 팔리는 '오! 감자' 완제품이 생산 라인을 따라 옮겨지고 있다.

다양한 물고기 모양으로 찍혀 나온 배합물을 오븐에 넣으면 순식간에 통통한 고래밥으로 변신했고 완제품의 4분의 1 크기로 자른 감자 배합 모형을 튀기면 오! 감자로 부풀어 오르는 공정을 보고 있자니 오랜 기술력이 묻어 있는 듯해 감탄이 절로 나왔다.한국에는 없는 '맛'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하는 게 오리온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토마토나 팥, 녹차 맛을 기존 제품과 절묘하게 섞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오리온은 올해 초코파이 출시 42년 만에 처음으로 바나나 맛 자매 제품을 한국에 선보였는데, 이곳 중국에서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녹차 맛이 나는 말차(末茶) 초코파이를 야심작으로 내놓을 예정이다.박 팀장은 "중국은 넓은 대륙 국가이면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어 식품의 경우에도 음식에 대한 기호, 성향 등이 지역별로 다르다"며 "이를 간파한 오리온은 제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 실행 시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공략해 왔다"고 강조했다.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인(仁)' 마케팅이다. 중국인의 DNA에 박혀 있는 단어 인(仁)을 초코파이 포장 겉면에 정(情) 대신 새겨 넣고 원래 파랑색이었던 포장지는 중국인이 좋아하는 붉은색으로 바꾸는 등 마케팅도 철저히 현지화한 것이 주효했다.
◆이성수 광저우 공장장 인터뷰 "어떤 회사도 모방 불가능한 독보적 기술 보유""초코파이는 유사품이 넘볼 수 없는 기술적 노하우로 만드는 파이입니다. 맛도 품질도 단연 좋지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비법이 있거든요." 이화경 오리온 부회장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실제 오리온 초코파이의 유통 기한은 10개월에서 1년으로 여타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 월등히 긴 편이다.이성수 하오리요우식품(광저우)유한공사 공장장은 "초코파이에 방부제 하나 넣지 않고서 오랜 기간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오리온만의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며 "경쟁사에서 짝퉁 제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자연 퇴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강조했다. 어떤 회사도 모방할 수 없는 기술력이 자연스레 맛과 품질의 차별화로 이어진 셈이다.이 같은 자신감을 발판으로 중국에서 현금 결제 방식을 고수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오리온이 중국에 진출하던 1990년대만 해도 외상 거래가 일반적이던 중국시장에서 현금 거래를 고집하면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의미와 같았다.이 공장장은 "우리 제품을 먼저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현금 거래가 정착됐다"며 "다른 한국 기업이 대금 회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우리는 생산 설비 투자를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현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게 술, 담배, 그리고 초코파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다.진출 초기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일화도 있다. 유난히 더운 중국 남부 지역에서 판매된 초코파이가 녹아버리면서 품질에 문제가 생긴 것. 이때 오리온은 매장에 있는 초코파이를 모두 수거해 1995년 9월 10만개의 초코파이를 불태워버렸다. 이 사건으로 중국에서 오리온은 품질에 각별히 신경 쓰는 기업으로 각인될 수 있었다.
여름이면 고온 다습한 남부에 위치한 광저우 공장이 사활을 거는 것도 바로 품질 관리다. 이 공장장은 "우리 직원들은 출근하면 바로 깨끗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구름다리를 통해 내부에서 내부로만 이동한다"며 "공장 안에서는 미생물이나 세균 오염을 막기 위한 각종 최신 설비를 구축하고 매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저우 공장은 특히 미국 식품 위생 감사 기관인 미국제빵협회(AIB)가 매년 실시하는 감사에서 올해 1000점 만점에 970점을 받았다. 이 공장장은 "800점만 넘어도 우수한 편에 속한다"며 "우리는 재작년 885점에서 지난해 945점, 올해 970점으로 매년 점수가 높아졌다"고 전했다.1997년 20억원에 불과했던 오리온 중국 법인의 매출은 지난해 1조3329억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 중국시장에서의 급성장에 힘입어 오리온의 해외 매출은 2009년 한국 매출을 앞서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법인은 한국보다 두 배 이상 번다. 이 공장장은 "2010년 라인 2개로 시작했는데 밀려드는 주문에 매년 2~3개씩 라인을 증설해 왔다"며 "올해 우리 공장은 매출 13억위안에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내년에는 큼직한 물류 센터를 짓는다. 이 공장장은 "본사에서 수백억 원을 과감히 투자해 전자동 제어가 가능한 물류 기지를 만들고 있다"며 "내년 9월께 완공되면 광둥성 일대 물량을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리온 광저우 공장 전경.

광저우=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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