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신⑨] 냉면의 바다에 편육 세 점의 도도함, 을지면옥

3인의 기자 '입맛 습격대'- 이상하게 땡기는 닝닝한 육수맛…파와 고춧가루의 묘한 추임새

[아시아경제 권성회 수습기자, 금보령 수습기자, 정동훈 수습기자] 을지로 공구상가에 있는 간판을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다. 하얀 바탕에 짙은 남색인지 빛바랜 검정인지 모를 색으로 쓰인 ‘을지면옥’ 간판 얘기다.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화려한 간판으로 손님의 눈길을 끄는 식당들과는 정반대다. 작고 좁아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입구에 들어서면 북한 지역 사진과 그림이 펼쳐진다. 실향민의 애환을 위로하는 듯하다. 그 통로를 지나 식당에 들어서니 머리가 하얀 어르신들이 냉면을 드시고 계셨다. 고향의 맛을 찾아오신 걸까. 세 기자는 자리에 앉아 냉면 세 그릇을 주문했다.
정동훈 기자(이하 정): 고명은 사실 다른 집에 비해 간단해. 흔한 무절임, 오이채도 없잖아. 대신 파와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고 고기 세 점이 올라가 있는데 냉면에서 도도함이 느껴져.권성회 기자(이하 권): 가장 큰 특징은 작게 썬 파와 듬뿍 뿌려놓은 고춧가루지. 의정부 평양면옥, 을지면옥, 필동면옥 등 이른바 의정부 계열이라 불리는 집들의 특색이래. 겉모습만 보면 거부감이 조금 들 수도 있는데 정작 먹어보면 평양냉면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설렁탕에 파와 고춧가루 뿌려먹는 느낌이랑 비슷하기도 하고.금보령 기자(이하 금): 냉면 육수 마시면 파 향이 퍼지는 게 독특해. 그리고 처음엔 왜 냉면에 고춧가루가 들어가는지 궁금했거든? 여러 번 먹다보니 고춧가루가 심심함을 약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네. 고기도 소고기랑 돼지고기 둘 다 들어가서 서로 다른 맛을 내면서도 잘 어울려.
정: 고명이 간단한 건 육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 같아. 육수를 온전히 즐겨보라는 거지. 은근히 느껴지는 육향이 좋네. 육수를 그릇째 몇 번은 들이켰어. 술술 넘어가는 육수 덕에 이 집은 테이블 회전도 빠르네. 옆 테이블 손님들 봤지? 앉은 지 10분 조금 넘은 것 같은데 벌써 다 먹고 일어나더라.권: 이 집 육수는 정말 ‘맑다’는 생각이 드네. 고깃기름이 살짝 떠 있어서 느끼할 줄 알았는데 깔끔해서 인상적이었어. 살짝 삼삼한 맛을 파와 고춧가루가 잘 보완하기도 하고. 묘하게 중독되는 맛이야. 계속 먹다가 ‘원샷’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을지면옥 평양냉면의 독특한 모양새와 육수에 신기함을 보였던 세 기자는 어느새 그 묘한 맛에 빠져들고 있었다. 낯설게만 느껴진 냉면 속 파와 고춧가루의 매력은 피자에 들어가는 고구마무스처럼 상상 이상이었다. 육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다 보니 그제야 면 생각이 났다. 금: 면은 어때? 여기는 메밀 함량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메밀향이 느껴지긴 느껴지는데 생각보다 강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 정: 여기 면은 메밀이랑 전분 비율이 7대 3이래. 면이 얇아서 육수가 잘 스며들었고 메밀향은 약하게 느껴져. 쫄깃한 식감이 좋고 육수와 함께 마시듯 먹어도 좋은 것 같아.권: 육수 간이 세지는 않았는데 면에서는 짭조름한 맛이 확 느껴져서 신기했어. 면이 얇아서 금방 국물이 스며들었나봐. 적당히 쫄깃해서 식감이 정말 좋은데 동훈이 말처럼 메밀향이 거의 나지 않은 건 아쉬웠어. 양도 조금만 더 많았으면 좋겠어. 금: 그래도 면이랑 육수가 서로 어울리네. 육수가 심심해서 면 메밀향이 강했으면 안 어울렸을 것 같기도 하고.
권: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면과 어울리는 고명이 있었으면 좋겠어. 열무김치나 배 같은 거 말이야. 무절임이 반찬으로 나오긴 하지만 냉면과 잘 어울리는 맛은 아닌 것 같아. 고기를 다 먹고 나니 면만 계속 먹게 돼서 심심했어.정: 다 먹고 나니 고춧가루 향이 좀 짙은 것 같아. 고춧가루가 심심한 육수 맛을 잡아주긴 하지만 덜 들어갔으면 해.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고춧가루 향이 육수 맛을 방해하거든. 파 향만으로도 충분히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빛바랜 간판을 달고 공구상점에 묻혀있는 평양냉면 맛집 을지면옥. 세 기자는 꾸미지 않은 평양냉면 육수 맛에 빠졌다. 파, 고춧가루, 기름진 고기 고명까지 맛과 향이 강한 재료들은 삼삼한 육수와 오묘한 조화를 이뤘다.을지면옥에 들어선 세 기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만큼 을지면옥은 건물 외관, 내부부터 냉면의 겉모습과 맛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있는 집이라 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냉면 마니아들이 을지면옥을 최고로 꼽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을지면옥 한줄평권: 독특함 속에서 정통의 맛을 보다.금: 소박함에 끌린다.정: 마시듯, 맛있게 비웠다.권성회 수습기자 street@asiae.co.kr금보령 수습기자 gold@asiae.co.kr정동훈 수습기자 hoon2@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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