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들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제품이 안전하다’고 허위·과장 광고한 데 대해 사기죄 책임도 묻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검사)은 25일 최대 가해업체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광고담당 책임자를 선별해 사기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옥시는 유해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한 가습기 살균제를 2000년 10월부터 2011년 보건당국 제재 전까지 판매하면서 제품 용기에 ‘인체에 무해하다, 아기에게도 안심’ 등의 문구를 적어 넣었다. 옥시는 그러나 제품 특성상 호흡기 노출 가능성에 따른 흡입독성 실험 필요성을 알고서도 PHMG에 대한 실험은 하지 않아 제품 유해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검찰은 법리검토 결과 유해성 여부를 허위·과장한 광고 행위가 표시광고법 위반과 더불어 사기죄의 형사책임도 물을 수 있다고 잠정 결론냈다. 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들이 제품을 팔아 번 돈은 소비자들을 ‘기망’해 쌓은 것이라는 취지다. 통상 상품 선전·광고에 다소 과장·허위가 따르는 것은 상거래 관행, 신의성실의 원칙 등에 비춰 ‘속였다’고 볼 정도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지갑을 열 수 있도록 얼마간 자극적이더라도 ‘물건 파는 사람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준이라면 소비자를 유인해 돈을 챙기는 행위가 따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다. 이와 관련 대법원 판례는 허위·과장 광고를 넘어 기망행위에 해당하는 요건을 “거래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관한 구체적 사실을 신의성실의 의무에 비추어 비난받을 정도의 방법으로 허위로 고지”한 경우로 제시하고 있다. 검찰은 소비자들의 호흡기를 드나들며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은 제품을 팔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유해성’을 ‘무해하다’고 알린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옥시 외에도 현재 수사 대상에 오른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 가운데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검찰은 신현우 전 대표(68·구속)를 비롯해 옥시 제품의 제조·판매를 총괄한 대표이사 및 광고담당 실무자를 선별해 공소사실에 사기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다만 ‘세퓨’ 제품을 만들어 판 버터플라이이펙트 대표 오모씨의 경우 본인 또한 피해자 유족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기망’의 고의가 부인될 수 있어 추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홈플러스의 경우 제품 개발·제조·판매·광고 관련 핵심 관계자를 선별하는 조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은 유해제품 판매대금이 곧 범죄금액이라는 입장이어서 10년 넘게 시장을 주도해 온 옥시의 경우 특정경제범죄법으로 가중 처벌될 전망이다. 사기죄의 경우 이득액이 5억원 이상이면 3년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무겁게 처벌하고, 이득을 본 수준에 버금가는 벌금도 함께 물릴 수 있다. 형법상 일반 사기죄는 10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상대적으로 처벌이 가볍다. 옥시의 경우 10년 넘게 가습기 살균제를 팔며 50억원대 매출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원료물질의 흡입독성 실험 필요성을 알고서도 이를 간과한 채 2000년 원료물질을 대체한 배경은 사기업의 ‘무사안일’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옥시는 기존 원료물질인 ‘프리벤톨 R-80'의 경우 흡입독성 실험을 했으면서도, 정작 이를 대체한 SK케미칼의 ’스카이바이오1125‘에 대해서는 흡입독성 실험을 생략했다. 검찰 조사 결과 옥시는 유해제품 생산·판매 이후 시점인 2000년 11월~2001년 1월 사이 사후적이나마 미국·영국 연구소 두 곳을 상대로 흡입독성 실험이 가능한지 알아본 것으로 확인됐다. 옥시는 실험 의뢰를 위한 내부 문서작업까지 마쳤지만 정작 실험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간 이를 두고 원가절감이나 새 주인을 맞아 한국 법인 경영진의 자리보전을 위한 저자세 등이 배경으로 꼽히곤 했다. 관련자 조사를 통해 이를 확인해 온 검찰은 “무사안일, 무책임, 무관심이 겹쳐 빚어낸 참극으로 보인다”고 표현했다. 기존 원료물질의 경우 흡입독성 실험 비용은 800만원대로 비용 부담이 크지 않았던 데다, 영국 레킷벤키저(RB)가 2001년 한국 법인을 인수하면서 대표이사 역시 외국인 전문경영인으로 대체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다만 이 외국인 경영자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개월 만에 사임했다. 인수합병 과정 전후 인력 통폐합 등 혼란한 틈에 다시 대표로 복귀했던 신 전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서로 책임을 떠미루다 큰 탈(?) 없이 제품 판매가 지속되자 유야무야 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자인 RB가 알아서 하겠지’, ‘이미 제품 판매 시작한지 반년 다 되어 가는데 별 문제 없는 거겠지’ 하는 사이 누구도 유해성 여부를 책임지고 확인하지 않은 셈이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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