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독선적 지도자'는 등장만으로도 위험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를 표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떠오르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낙태여성 처벌 등의 막말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주장 및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등의 무지막지한 행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고 횟수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꺼질 줄 모르고 급기야 두 명의 대통령 후보 중 한 명이 될 예정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진출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니 이미 공화당 후보 선출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가장 큰 우려는 바로 '제2, 제3의 트럼프'를 탄생시킬 가능성이다. 2015년 6월 공화당 경선에 출마하기로 결정한 이후 그의 막말은 매일 쏟아져 나왔고 미국 언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보도하면서 거의 무한 반복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자신들 내부에 숨겨져 있던 '인종차별적 태도' '반세계화 정서' '무슬림에 대한 비합리적 증오심' 등이 표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목도했다.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감추고 있던 성향이 트럼프에 의해 봉인 해제되면서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등장해버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유세 도중 지지자들에게 둘러 쌓여 있다. (애플턴=AP연합뉴스)

이는 앞으로 공화당의 정치적 행태를 바꿀지 모른다. 트럼프 지지 세력을 확인한 누군가가 또 다시 트럼프를 흉내 내며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수 있다. 트럼프에 의해 한번 표출된 정치적 성향이 또다시 결집되고, 심지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두 번째 우려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보여줄 반칙과 망언이 상대 후보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 시스템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공정경쟁이나 건설적 비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더럽고 야비하면서, 심지어 근거 없는 파괴적 비난을 일삼아 상대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는 크루즈나 피오리나 공화당 경선후보들에 대해 비난할 때 여실히 보여주었다. 따라서 트럼프는 선거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민주당의 힐러리 후보에 대한 협잡과 비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더라도 선거 과정에서 힐러리를 흠집 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의 파괴적 비난은 지지자들과 미디어에 의해 매일같이 재생산될 것이며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에도 힐러리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킬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세 번째 우려는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 이후 미국을 이끌어가는 데 '트럼프에 의해 결집된 세력'이 큰 장애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금 무수히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트럼프현상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경제난'을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서민들의 소득이 2000년 이후 정체상태에 있으며, 부의 집중이 더욱 심화되는 '부익부 빈익빈'현상 등은 새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지나치게 이미지가 훼손된다면 아무리 노련한 힐러리라 할지라도 정책을 이끌어갈 힘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큰 우려는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0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와 힐러리가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다면 트럼프에게 주어진 가능성이 0보다 크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 만약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파리에서의 폭탄테러와 같은 큰 사건이 터진다면 유권자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극단적인 결과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이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트럼프와 같은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걱정스럽다. 독선적 지도자는 단지 등장만으로도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친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영향력이 큰 나라의 지도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미국인은 아니지만, 미국 시민의 집단 지성과 선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기 바란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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