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필수 증권부장
중국 명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영락제'는 세계 최초의 첩보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동창(東廠)'이란 조직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쿠데타로 조카를 몰아내고 황제로 등극한 영락제는 본인을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하는데 동창을 활용했다. 동창의 수뇌부는 자신이 황제가 되는데 공을 세운 환관들로 채웠다. 동창은 처음에는 관리의 부정이나 모반(謀反)의 정탐을 주요 임무로 삼았지만 차차 민간의 사소한 범죄까지 확대 취급했다. 게다가 사법기관을 거치지 않고 구금(拘禁) ㆍ처형의 권한을 갖게 됐다. 정보와 사법권에 경찰권까지 가진 동창은 사실상 명나라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당시 동창은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에도 스파이를 파견할 정도로 조직이 컸다. 요즘으로 치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동창을 장악한 환관들은 군(軍)에 대한 감찰권까지 부여받았다. 영락제는 주변국에 원정군을 보낼 때 환관을 감찰관으로 딸려 보냈다. 동남아를 넘어 아프리카까지 원정대를 보낼 때는 아예 환관을 총사령관(정화)으로 삼기도 했다. 권력을 장악한 조직은 그대로 두면 점점 더 비대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정보기관은 국가 안보를 절대가치로 내세워 끝없이 팽창하는 속성이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정보기관인 CIA와 KGB가 경쟁적으로 세(勢)를 불릴 수 있었던 것도 국가 안보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명나라 환관들의 정보기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동창으로도 모자라 나중에 서창(西廠)과 내행창(內行廠)이란 조직을 만들어 세를 불렸다. 급기야 명나라 말기의 환관 위충현은 세도가 황제를 능가할 정도였다. 조선 사신 홍익한은 명나라를 다녀와서 "천하의 권세를 가진 첫째는 위충현이고, 둘째는 객씨이고, 셋째가 황제"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객씨는 당시 명나라 황제의 유모로 위충현과 사통한 사이였다. 명나라 정보기관의 권한은 막강했지만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위충현보다 100년 정도 앞서 권력을 잡았던 왕직은 '서창'을 권력기반으로 했지만 적국(오이라트)에 대한 오판으로 황제를 포로로 잡히게 했다. 정보기관을 내부의 정적을 견제하고 본인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만 썼기 때문이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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