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무역특화지수 분석
1~8월 韓 25.6·中27.8
R&D 투자도 中 4분의 1
한국이 3년째 중국에 전기·기계 등 첨단 산업 수출 경쟁력에서 밀린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첨단기업 연구개발(R&D)비도 중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배터리 등 중국산 제품이 글로벌 시장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국내 첨단제품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평가다. 재계는 연말 일몰 예정인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기한을 연장하는 등 정책 지원이 시급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8일 발표한 한국과 중국 첨단산업 수출입 데이터, 첨단기업 재무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면 올 1~8월 첨단산업 무역특화지수(TSI)는 한국 25.6, 중국 27.8이다. 무역특화지수는 특정 상품의 비교 우위를 나타내는 지수로, 양수(+)면 순수출국, 음수(-)면 순수입국이라는 뜻이다. 높을수록 경쟁력이 강하다는 의미다. 2022년 이후 3년 연속으로 중국 지수보다 낮았다.
격차가 크게 벌어진 건 전기, 기계 분야였다. 전기 격차는 2014년 17.1포인트(한국 24.7·중국 41.8)에서 올해 63.2포인트(한 5.3·중 68.5)로 벌어졌다. 기계는 같은 기간 17.1포인트(한 11.3·중 28.4)에서 39.7포인트(한 12.3·중 52.0)로 격차가 확대됐다.
모빌리티는 우리나라가 우위였지만 최근 3년간 격차는 좁아지는 양상이다. 75.6포인트에서 6.3포인트로 양국 간 차이가 줄어든 것이다. 그만큼 자동차 등 중국산 모빌리티의 기술력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화학도 양국 격차가 43.9포인트에서 23.5포인트로 떨어졌다. 중국 모빌리티는 2018년, 화학은 2022년부터 각각 무역특화지수가 플러스(순수출)로 전환되면서 한국과 본격 경쟁 구도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더 큰 문제는 산업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R&D 투자에서도 양국 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점이다. 한경협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데이터를 활용해 양국 기업(본사) 3만2888곳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한국 첨단기업은 R&D 비용 510억4000만달러(약 71조원)를 지출했다. 반면 중국은 2050억8000만달러(약 286조원)를 썼다. 매출 대비 R&D비 비중도 한국 3.5%, 중국 4.1%였다. R&D 비용 증가율의 경우 한국은 2013년 대비 연평균 5.7%, 중국은 같은 기간 연평균 18.2%를 기록했다.
재계는 우리나라 첨단산업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선 투자 규모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 투자를 늘리려면 정책 지원을 통해 R&D 연구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올 연말 일몰되는 조특법상 국가전략기술 R&D 및 사업화시설 투자 세액공제 혜택 기간을 조속히 늘려야 한다고 했다. 또 국가전략기술에 인공지능(AI), 방산, 원자력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가전략기술 지정 방식도 현행 포지티브(허용 사항 외 모두 금지)에서 네거티브(금지 사항 외 모두 허용)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세액공제에서 직접 환급하는 방안도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직접 환급 제도는 당해연도에 적자 때문에 세금을 못 내서 세액공제를 온전히 받을 수 없는 경우 차액 또는 공제액 전체를 현금으로 환급하는 제도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시행 중이다. 직접 환급 제도 도입이 여의치 않으면 이월 기간을 현행 10년보다 더 늘려달라고 했다. 지금은 10년 안에 이익이 나면 이월해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기간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시설투자 공제 대상에 토지·건물 등 유형자산, R&D 시설·장비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석권 한국공학한림원 산업미래전략위원장은 "산업 규모, 인건비 경쟁력, 기술 습득 속도 등에서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중국을 당해낼 수 없는 만큼 '더 싸게 만드는 경쟁'이 아닌 신제품 개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한국 첨단 기업들은 '공정기술 개발'에서 '신제품 개발'로 연구개발(R&D) 방향과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처럼 대한민국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대체불가한 제품을 선도적으로 만드는 사례를 늘려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국내 첨단 산업 경쟁력이 중국에 밀리지 않으려면 세액공제와 더불어 투자보조금 지원, 전력·용수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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