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재협상 시 허 찔릴 가능성"
일각선 신중론…'독소조항' 변수고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반도체 보조금 지급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미국에 투자를 결정한 반도체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아직 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보조금 지급에 관한 예비거래각서(PMT)를 체결하고 협상 중이다. PMT 계약상 삼성전자는 64억달러(약 9조원)를 받고 SK하이닉스는 4억5000만달러(약 6300억원)의 보조금과 최대 5억달러(약 7000억원)의 정부 대출, 최대 25%의 세액공제 등을 받게 된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포함 2030년까지 총 450억달러(약 63조원), SK하이닉스는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건설에 약 38억7000만달러(약 5조40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우려하는 건 보조금 수령 없이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 비벡 라마스와미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정권 인수 전에 지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감사관이 이런 막판 계약을 면밀히 조사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철회할 경우 국내 기업들이 현지투자를 재검토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지난 7월 최태원 SK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안 준다면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보조금 지급 무산이 현실화된다면 재고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보조금 관련 구체적 언급을 하기 전까지 최대한 상황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처럼 바이든 정부가 공언한 보조금 전액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부라도 먼저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26일 인텔에 최대 78억6500만달러(약 11조원)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합의금(85억달러·약 12조원)보다 줄어든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만큼 바이든 정부 재임기에 협상을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한국 기업의 '전략적 가치'를 미 정부에 제시하며 보조금 재협상을 시도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트럼프 당선인이 정부 출범 후 돌변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보조금 지급에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만큼 삼성·SK가 (바이든 정부가 제시한) 보조금 수령 조건을 충족하고 있고 협상할 역량이 된다면 수령액을 줄여서라도 빨리 받는 것이 낫다"며 "트럼프 정부 출범 후에 재협상을 하려 해도 미국이 상무부·기업 간 일대일 협상이 아닌 양국 정부까지 끌어들일 수 있고, 방위비 문제 등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의제까지 제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지원법(CSA)'을 만들면서 초과 이익공유, 현금흐름 등 재무지표 제출, 자사주 매입 제한, 현지 노동자 채용, 어린이집 설치 의무화 등 '독소조항'을 담았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트럼프 정부에서 돌연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선회하는 대신 바이든 정부보다 강력한 독소조항을 추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바이든 정부 재임기에 보조금을 받아내겠다며 눈에 띄는 행위를 취할수록 기업 협상력만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정부가 제시할 수 있는 독소조항으로는 ▲미 현지 공장에 최신 노드 공정 설비 설치 ▲레거시(구형) 노드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기술 노하우 요구 ▲노동자 채용 등이 거론된다.
반도체공학회 차기 회장 내정자인 신현철 광운대 반도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바이든 정부 재임기에도 삼성·SK는 대미 투자에 보조금이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통상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보조금을 받기로 한 것"이라며 "트럼프 2기 행정부 협상 전략과 독소 조항이 구체화하기 전에 기업이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트럼프 정부 출범 뒤에도) 협상 테이블을 열 수 있도록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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