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게임중독 때문에 저런 놈이 된 게 아니라, 저런 놈이 게임중독에 빠진거다. 게임하는 걸 죄처럼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인천 연구수의 한 30대 초반 남성이 지난 2년 동안 친딸 A양(11)을 학대한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한 누리꾼은 21일 관련 기사에 이 같은 댓글을 작성했다. 사람이 지은 죄를 왜 게임 탓을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학대 가해자가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살았다는 사실 때문에 '게임중독'에 대한 논란은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아동학대ㆍ총기난사 등 범죄 배경으로 주로 지목…'게임에 미쳐서'="아빠는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말고는 거의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했어요"지난 12일 친아빠의 오랜 학대를 피해 집에서 맨발로 도망쳐 나온 A양은 발견 당시 경찰에 이같이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녀야 할 아이는 2년 넘게 학교를 가지 못했고, 120cm의 키에 몸무게는 4살 평균인 16kg에 불과했다. 아이가 이렇게 방치되는 동안 가해자 남성은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히 비난이 거세졌다.게임이 각종 사건과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훈련장에서 발생한 무차별 총기 난사로 3명이 숨진 사건에서 범인 최씨(23)가 평소 온라인 게임에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게임중독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앞서 지난해 6월 강원도 동부전선 일반전초(GOP)에서 5명이 숨진 이른바 '임병장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게임이 지적됐다. 당시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새누리당)은 "임 병장이 게임 중독에 빠져 자기만의 세계에 살다 보니 군대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우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말해 논란에 가세했다.일부 온라인 게임에서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게임 아이템이 거래되는 등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실제 이를 활용해 초등학생까지 대상으로 한 사기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 두번째)이 국회에서 국방부 관계자를 향해 병영 내 게임채널 차단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사진제공 : 김광진 의원실)
◆"총 게임때문에 총기난사…축구 게임 하면 박지성 되나요?"=그렇다고 게임을 범죄로까지 연결될 수 있는 '유해 콘텐츠'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크다. '게임에 빠져서 범죄를 일으켰다'는 논리대로라면, 게임을 즐기는 일반 유저(user)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셈이기 때문이다.최근 국방부에서 병영 내 게임채널 방영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촌극도 이번 논란과 맞닿아 있다. 국방부는 당초 이달 1일부터 병사들이 시청하는 병영 내 TV에 e스포츠ㆍ게임채널 등을 차단하려다 역풍을 맞고 이 같은 결정을 철회했다.국방부는 "게임채널은 유해ㆍ불필요 콘텐츠이고, 생활관 내에서 병사들이 게임채널을 과도하게 시청하고 있어 다른 병사들이 불만이 접수됐다"며 차단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지난 9일 국회 국방위 소속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성명서를 내고 "대한민국 성인남성 병사들이 마음대로 TV채널을 선택할 권리도 없는가"라며 "군 PC방에서 게임을 하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게임방송이라도 보며 여가를 즐기는 것조차 차단하나"며 강하게 비판했다.국회에서 이 같은 비판이 나오자 국방부는 일주일 만에 게임채널 차단 결정을 취소하고 이달 중 다시 병영TV에서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광진 의원실의 김규현 정책비서관은 이날 통화에서 "빠른 시간에 해결돼 다행이지만, 군 관계자들의 게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며 씁쓸해 했다. 온라인 상에는 이 같은 '일차원적 시각'을 비꼬는 패러디물도 나돈다. '스포츠 게임은 나를 스포츠 선수로 만들어주지 않고, 법정 게임이 나를 변호사로 만들어주지 않고, 의료게임이 나를 외과의사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전투게임이 나를 살인자로 만들 거라고 생각하나?'라는 내용이 담긴 이미지는 전 세계 게임 유저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다. 일각에서는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등 사회의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마치 게임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기 위해 '게임중독'을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논란의 '4대 중독법', 국회서 2년6개월째 계류 중=이처럼 최근 몇 년 동안 게임이 각종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 당하던 중, 2013년 국회에서 이른바 '4대 중독 관리법'이 발의돼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결과적으로, 해당 법안은 국회에서 2년 6개월째 소관 상임위에서 계류된 채 낮잠만 자고 있다. 사회적 논란을 틈타 '화제'만 일으킨 뒤 정작 논의는 뒷전이었다.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2013년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당시 게임을 알코올ㆍ도박ㆍ마약 등과 함께 4대 중독으로 규정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중독 예방ㆍ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곧바로 게임 유저뿐 아니라 관련 업계 전반에서 이슈가 되며 각종 토론회가 벌어지는 등 뜨거운 논쟁으로 낳았다. 하지만 정작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신 의원은 복지위에서 현재 안행위로 상임위를 옮겼다. 신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법안 발의과정에 참여했던) 담당 보좌관 두 명이 모두 그만뒀다"며 "게임 중독여부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소관 상임위의 논의를 존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한 국회 관계자는 "사실상 (법안 논의를)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20대 표심을 좌우할 수 있는 4대 중독 관리법을 어느 방향으로든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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