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 논설위원
최근 재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의 국제 위상을 잘 보여주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한국이 중국에 기술을 추월당하고 일본에 가격마저 따라잡혀 '샌드위치'가 아니라 '샌드백' 신세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음을 보여주는 '한중일 경쟁력 현황 비교'라는 자료였다. 이는 한국이 중국에는 기술력에 앞서고, 일본에 대해서는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의 믿음을 여지없이 깨버린 '사건'이었다. 전경련은 한국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로부터 얻어맞는 샌드백이지 두 나라 사이에 낀 샌드위치는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그런데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이 일본은 물론, 중국에도 뒤처져 이제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국장급 공무원의 전언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열린 경영자학회에서 나온 얘기라고 전하면서 중국은 기술수준뿐 아니라 혁신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경영능력에서 한국을 앞선 것으로 해외 경영학자들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제조업의 기술력이 중국에 앞서 있다는 산업연구원(KIET)의 조사결과는 부인하지 않았다. KIET가 708개 기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의 기술력이 여전히 중국에 3.3년 앞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기술력과 창업 환경, 혁신성과 신기술, 신산업의 출현 등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중국에 확실하게 뒤처졌다고 그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난 10년간 제조업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산업이 한국에는 출현하지 못한 반면, 중국에서는 정보기술(IT)제조업체 샤오미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등 무수히도 많은 기업과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면서 거대경제를 이끌고 있다. 14억 중국은 역동적인 반면, 한국은 역동성을 상실한 것이다. 과거 '다이내믹 코리아(역동적인 한국)'는 실종됐거나 멸종했다. 이러니 우리나라가 중국과 벌이는 속도전에서 뒤지고 양국 간 기술격차는 눈에 띄게 좁혀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장탄식했다.맞는 말이다. 최근 삼성이 자동차 전장부문에 진출하고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EQ900를 출시하기는 했지만 둘 다 세계를 선도할 신산업의 출현을 알린 것은 아니었다. 기존 산업으로 활동능력을 넓히거나 기존 제품을 고급화한 것뿐이었다. 자금력과 기술력, 인력을 두루 갖춘 간판 두 기업의 사정이 이럴진대 다른 기업은 말해 무엇할까.다이내믹 코리아가 어떻게 하다 느림보코리아, 샌드백으로 전락했을까. 다른 나라의 절치부심, 용맹정진으로 추격의 속도가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저지와(井底之蛙)'의 협소한 시야를 벗어나지 못한 정치권의 발목잡기, 비대한 공공부문의 혁신저항, 노동계 일각의 변화 거부, 기업들의 현실 안주 등 우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그중에서도 정치권과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기업들은 세계적인 저성장과 공급과잉의 쓰나미에 떠내려가면서 뒤늦게 구조조정과 산업재편이라는 나뭇가지를 붙잡았지만 정치는 그 가지마저 꺾고 있다. 각종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던 정부도 뒤늦게 기업들이 서로 필요한 사업을 주고받으며 불필요한 분야를 버리고 강점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일명 원샷법을 만들었지만 야당을 설득하지 못했다.어디 이뿐인가. 비대한 공공부문은 벤처기업과 신산업의 출현을 막고 있다. 정부는 공공ㆍ노동 등 4대부문 개혁을 한다지만 4대부문 소속원들조차 정부의 노력을 낮게 평가할 만큼 지지부진하다. 그 결과가 조선ㆍ철강 등 한국 제조업과 한국의 경쟁력 추락이며 한국의 샌드백 신세다. 이뿐이 아니다. 미국 컨설팅회사 딜로이트글로벌과 미국경쟁력위원회는 2020년 한국 제조업 경쟁력지수가 세계 6위로 인도에 한 단계 뒤질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맞든 안 맞든 두렵기 짝이 없는 조사다. 이런 암울한 전망을 극복하려면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사양산업의 신속한 정리와 재편, 과감한 혁신을 통한 신산업 육성만이 살 길이다. 그것이 실종된 다이내믹 코리아를 되찾는 길 아닐까.박희준 논설위원 jacklond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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