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노동개혁은 결국 '노동유연성'과 '소득불균형'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정부와 여당, 경영계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해고를 탄력적으로 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와 야당은 먼저 600만명을 넘어선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과 동등한 임금을 받게끔 불균형을 없애야 한다고 반박한다. 노동개혁이 계속 지지부진한 까닭은 이 두 가지 논제가 정치논리와 결합해 양보 없이 평행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노동유연성과 소득불균형은 하나가 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인가?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노동유연성을 확보해 일자리를 늘리면 장기적으로는 소득불균형을 좁힐 수 있는 만큼, 두 가지를 반대적 개념으로 보면 안된다"며 "함께 갈 수 있는 개념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반대의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앞서 노동개혁을 이룬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등 선진국들이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동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덴마크, 네덜란드 등 해외사례를 보면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라며 "패키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일본은 기간제와 파견근로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는 대신, 이들의 근로조건을 정규직과 동등하게 했다. 덴마크는 해고절차를 더 완화하되 일자리의 이동이 쉽게끔 직업훈련과 실업수당을 대폭 강화했다. 이른바 유연안전성 모델이다.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덴마크보다 사회안전망이 열악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나뉘는 이중구조가 심화돼있어 고용안정성에 더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더라도 해고기준을 지나치게 완화하면 경제위기에 오히려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는 점에서 덴마크 모델에 대한 비판도 있다"며 "선진국에 비해 노동시장의 정치적, 제도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고 말했다.
노동유연성을 둘러싼 노사정의 시각차는 현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어느 정도인지 바라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나라별 노동시장 유연성의 종합평가(한국노동연구원)에서 한국은 2008년 107개국 중 38위였으나 2013년 70위로 추락했다. 미국 콘퍼런스 보드에서 발표한 주요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살펴보면 한국은 32.31달러로 미국(67.32달러), 독일(57.36달러), 일본(43.77달러) 등 주요국 평균(34.23달러)에 못 미친다.반면 노동계와 야당은 이미 노동시장이 충분히 유연화돼있다는 입장이다. 올해 8월을 기준으로 한 비정규직 규모는 630만명에 육박한다. 노동계는 실제 비정규직은 900만명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정규직 해고제한을 기준으로 한 고용보호지수에서 한국은 201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22위"라며 "지나친 유연화와 불안정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소득불평등에 대한 양측의 시각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600만명대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올해 월평균 임금은 146만7000원으로, 정규직 269만6000원의 54%에 불과했다. 정부 역시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표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동계 요구는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인데 사실상 어렵다"며 "최대한 정규직으로 갈 수 있게 기회를 확대하며 차별받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보강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 노동개혁안은 실업급여 연장 등에 그쳐 안전망 강화와 소득불평등 해소측면에서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다. 금 교수는 "실업급여 연장은 실업기간을 더 늘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조사도 있어, 이것만으론 해결이 안된다"며 "노후생활 대책, 사업실패 시 재도전을 위한 환경 등 사회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기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정부가) 역할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일각에서는 독일의 근로시간계좌제 도입 등이 검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감이 많을 때 초과근로 수당을 요구하지 않고 적립해둔 후, 불황시기에 이를 안정적인 소득 기반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소득안정화와 고용안정을 함께 달성하며 노사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제도"라고 소개했다.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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