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국내총생산(GDP)에서 2015년 기준 한국의 순위는 11위다. 2010년 기준 15위에서 러시아와 스페인 등 경제위기를 겪는 유럽 국가들이 뒷걸음친 결과다. UNDP가 발표하는 선진국 순위에서 한국은 2013년 기준으로 세계 12위라고 한다. 1인당 GDP, 문맹률, 대학 진학률, 인터넷 보급률, 평균 수명, 치안 등의 요소를 종합해 산출한 결과라고 한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데 이어 선진국 정상들의 회의인 주요 20개국(G20)에도 당당하게 참석하는 걸 감안하면 한국은 선진국의 일원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겉모습만 선진국과 비슷해지고 있을 뿐 과연 진짜 선진국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때가 너무도 많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데 필요한 제도와 관행이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경우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소비와 생활만 선진국 흉내를 내면서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 듯한 경향도 적지 않다. 선진국의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론 시민 중심의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우선 경제적으론 근대 시민사회는 시장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 왔다.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격결정에 참여하는 시장의 힘이 강해지면서 시민사회도 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보면 갈수록 시장의 힘은 약화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시장 실패의 요인인 재벌의 힘만 갈수록 세지는 듯하다. 극소수의 재벌을 제외하곤 시장의 존재는 힘을 잃고 말았고 언론도 그 힘을 쓰지 못한다. 사립교육이 위축되면서 교육은 국영산업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사회 모든 부문이 다 위축되고 오로지 정부와 재벌만이 힘을 쓰는 나라가 됐다. 역사의 발전방향과는 반대 방향이다. 시민사회의 또 다른 한 축인 민주주의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대의제도는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다수결의 원칙은 어느 순간 승자 독식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토론문화 속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해 온 선진국과는 달리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도출하기보다는 진영논리만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사회적 동력이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고도성장 시절 나타난 과당경쟁과 부패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본말이 전도된 경우가 적지 않다. 만점이 돼야 1등급을 받는다는 수능도 실력을 테스트하기보다는 실수를 적게 하는 훈련이 되고 말았다. 대학 수험생이 작은 실수로 엄청난 결과 차이가 났을 때 당사자는 우리 사회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질지 뻔하다. 공직자 선임도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보다는 실수 여부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배임죄는 너무 엄격해 단순한 경영판단 착오조차 배임죄 처벌의 대상이 돼 경영인들의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사회 곳곳에서 복지부동을 초래하는 요인뿐이다. 과거 과당경쟁의 폐단을 막고 부패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마련된 각종 제도가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아직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성장의 원동력이 돼야 할 기업들은 도전과 모험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듦에 따라 과거와 같은 도전적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긴 해도 기업가 정신을 너무 일찍 잃어 버렸다.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거나 손쉬운 사업만을 선호하면서 상속과 수성에만 골몰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일자리 창출이 안되는 게 너무 당연하다. 한국보다 훨씬 선진경제인 미국의 경우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기업들이 경제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면 성장률의 문제만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 경제가 세대교체에 실패해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내는 데 실패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청년들이 공무원 취업만을 선호하는 현상도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한마디로 선진사회의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발전이 정체된 가운데 국민들의 의식과 소비성향만 선진국 흉내를 내는 데 급급한 형국이다. 결국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압축성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가려면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민의가 존중 받는 민주주의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신뢰와 책임에 바탕을 둔 제도를 보다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다음에야 한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최성범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