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반납, 희망펀드 자율이라지만 압박…진상고객 여전, 비대노조에 대한 비판도
은행원의 억대 연봉이 이슈다. 하는 일에 비해 급여를 많이 받는다는 지적이다. 호봉제를 연봉제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저금리에 수익성이 악화되는 와중에 핀테크(기술+금융)로 대변되는 금융혁신의 파고마저 높다. 생존을 위한 금융개혁에 직면한 은행원들은 "더 이상 우리는 금수저가 아니다"고 항변한다. 지난 7월 <대한민국 은행원으로 산다는 것>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번 은행원들의 삶과 애환을 3회에 걸쳐 싣는다.
-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A은행에서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김윤수 부장(50세ㆍ가명)은 요즘 들어 격세지감을 실감한다. 김 부장이 행원 시절만 해도 은행감독원(지금의 금융감독원)에는 '수반 검사역'이라는 자리가 있었다. 은행 업무를 감사하는 무서운 자리였던 만큼 저들이 뜨면 '수반님, 수반님' 하며 칙사대접을 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호랑이 앞에 있는 토끼처럼 초라하고 비굴한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종종 은행장을 수행해 금융당국 수장들을 만날 때면 웃음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 특히 지난 5월 시중은행들이 금감원을 향해 "감독분담금(금감원의 관리ㆍ감독을 받는 금융사들이 해마다 금감원에 지불하는 돈)의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을 때는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감히 감독 기구에 큰 소리를 치다니. 그렇다고 갑을(甲乙) 관계가 역전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금융당국은 갑(甲), 은행은 을(乙)이다. 얼마 전 금감원 직원이 30분이나 늦게 약속 장소에 왔을 때도 환한 미소로 맞았다. 행여 꼬투리를 잡혔다가는 좋을 게 없지 않는가. ◆ 당국-고객-노조의 '삼각 압박' 은행원들이 스스로 말하는 그들의 지위를 기호화하면 삼각형이 나온다. 갑을 상징하는 각 꼭지점에는 금융당국, 노조, 고객이 있다. 을인 은행원은 삼각형 안에 위치한다. 은행원을 금융당국과 노조와 고객이 압박하는 형상이다. B은행 박영춘 부행장(51세ㆍ가명)은 은행지주 회장과 은행장들이 청년고용 절벽을 해소하기 위해 연봉 반납 행렬에 동참하는 현상에 대해 "개별적으로 하면 되지, 굳이 다 같이 그렇게 티를 내면서…"라며 혀를 찼다. 형식은 '자발적 반납'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은행원은 거의 없다. 박근혜대통령이 '1호'로 이름을 올린 청년희망펀드도 정권 눈치보기식 실적 경쟁이 불붙으면서 은행원들이 가입을 종용받았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나 금융당국이 손가락만 튕기면 알아서 재주를 부려야 하는게 은행원의 숙명이라고 박 부행장은 씁쓸해했다. C은행 김성하 상무(50세ㆍ가명)는 "금융당국이 아직도 70년대식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며 "관이 나서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으로 사사건건 통제를 하려는 바람에 은행은 혁신적인 변화를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푸념했다. 금융당국의 간섭에 기대는 은행의 생리를 꼬집는 의견도 있다. 같은 은행 조일수 부부장(45세ㆍ가명)은 "큰 틀에서는 '땡큐 관치'인 측면도 있다"며 "은행은 사실상 '라이선스 산업'이어서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어렵고 덕분에 기존 은행들은 온실속에서 생존해왔다"고 털어놨다. ◆ 막가는 고객, 비대한 노조 은행원 입장에서는 금융 당국만큼이나 '진상 고객'도 상대하기가 어렵다. D은행 이승수 차장(40세ㆍ가명)은 "은행이 서비스업이다보니 고객들의 요구가 지나칠 때가 많다"며 "그런 고객들을 상대하는 은행원들도 감정노동자"라고 토로했다. 진상 고객의 악성민원은 종류가 다양하다.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연체됐다고 안내했더니 '직원이 불친절하다'는 엉뚱한 민원을 계속 제기하며 업무를 방해하거나, 펀드 손실을 봤다면서 그 돈을 메꿔야 하니 사은품을 달라고 생떼를 쓰거나, 은행장이 바꿨는데 왜 자신에게 미리 통보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이 차장은 "금리가 떨어졌으니 대출 금리를 내려달라며 과도하게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며 "떼를 쓰면 들어주지 않겠냐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악성 민원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원들 사이에서는 노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E은행 김수남 지점장(49세ㆍ가명)은 '인노비(인사부·노조· 비서실)'가 은행의 절대 권력이라고 귀띔했다. 인사부는 감찰 기능을 포함하고 있고 비서실은 은행장의 측근으로 포진돼 있다. 그 중에서도 노조의 권력이 가장 쎄다. 김 지점장은 "노조위원장을 역임하면 동기보다 더 빠르게 승진한다"며 "노조 창립기념일 행사를 가보면 한자리 하는 분들이 다 몰려오는게 정치판을 보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호봉제를 연봉제로 전환하자는 여론에 대해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지점장은 "노조는 같은 이해관계로 한 목소리를 내야 힘이 세지고 단결하는데 (연봉제가 도입되면) 협상권이 노조에서 개인으로 넘어가 노조의 힘이 무력해진다"고 설명했다. 같은 지점 이창수 차장(41세ㆍ가명)은 "약육강식 사회에서 고래와 싸우려면 정어리들이 한데 뭉쳐야 한다는 게 노조의 생각"이라며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은행의 비효율을 낳기도 한다"고 꼬집었다.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금융부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