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의 사진에 숨겨진 투쟁의 방식

한인애국단 거사 전 기념 촬영…의열단은 왜 기록 안 남겼나

영화 '암살'에서 안윤옥과 속사포, 황덕삼이 기념촬영하는 장면.

#1. 한국독립군 저격수 안윤옥,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은 암살 작전을 수행하러 상하이를 떠나기 전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2. 암살단은 무기를 숨겨 들고 경성에 잠입한다. 단장 안윤옥은 작전을 앞두고 말한다. “5분 안에 끝내고 우린 살아서 돌아갈 겁니다.”이 두 장면은 중국에 기반을 둔 항일 암살투쟁의 방식을 가르는 단서가 된다.

윤봉길 의사

영화 ‘암살’에서 재현한 것처럼 이봉창ㆍ윤봉길 의사는 작전을 앞두고 사진을 찍었다. 태극기 앞에서 의거에 임하는 각오를 쓴 글을 목에 걸고 손에는 무기를 들었다. 거사를 실행을 앞둔 역사적 기록을 남긴 것이다. 두 의사는 한인애국단 소속이었다. 반면 의열단원은 인물 사진만 남겼다. 의열단원이 태극기를 배경으로 결의를 다지거나 무기를 든 사진은 전해지지 않는다. 의열단원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열단원은 기념사진을 촬영하더라도 원판마저 회수해갔다. 한인애국단은 임시정부(임정)의 국무령 백범 김구가 중심이 돼 조직했다. 의열단은 약산 김원봉이 이끈 암살·파괴 비밀결사 조직이었다. 대표적인 의열단원으로는 김익상ㆍ김상옥 의사 등이 있다. 의열단원은 왜 사진 촬영을 극도로 꺼렸나. ‘암살’의 리더 안윤옥의 “살아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실마리로 답을 풀 수 있다. 의열단원은 기본적으로 저격ㆍ폭파 작전을 마치고 생환하는 작전을 폈다. 목숨을 걸었지만 돌아온 뒤 다시 활약하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짰다. 의열단원으로서 얼굴이 노출될 경우 작전 후 탈출·도피 과정에서 잡힐 위험이 커지고 또 다시 활약하는 데 제약이 커지게 된다. 의열단은 그래서 기념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김익상 의사

김익상 의사는 1921년 전기시설 수리공을 가장해 조선총독부 청사를 폭파한 뒤 놀란 일본 헌병들이 뛰어오자 “2층으로 올라가면 위험하다”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청사를 빠져나왔다. 김 의사는 베이징(北京)으로 탈출해 약산에게 의거 사실을 보고했다. 그는 1922년 이종암ㆍ오성륜과 함께 상하이(上海)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에게 총탄을 날렸다. 당초 이들은 거사 후 자전거를 타고 도피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과 달리 김익상·오성륜 의사는 자전거에 이르기 전에 체포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김상옥 의사도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뒤 도피해 은신했다. 며칠 뒤 은신처가 밀고돼 무장 순사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다. 그러다 다시 무장경찰 400여명과 접전을 벌인 끝에 자결했다. 임정은 일제에 붙들려 사형을 당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거사를 준비했다. 이는 거사 직후 윤봉길 의사가 도피하려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후 체포됐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그래서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거사 전 사진에는 비장함이 흐른다. 임정이 거사 전에 사진을 촬영한 데에는 의거 후 임정이 한 일임을 알리는 데 활용한다는 뜻도 있었을 듯하다. 두 의사의 1932년 거사 전 임정은 침체일로에 빠져 있었다. 이 사실은 김구가 ‘백범일지’에서 “민족운동이 매우 침체하여 테러공작이라도 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회고한 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윤봉길 거사에 대해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백만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며 임정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임정은 다시 독립운동의 구심체로 자리잡았다. 영화 ‘암살’로 돌아오면, 암살단원의 사진 촬영은 백범 방식이었고, 안윤옥의 “살아서 돌아간다”는 말은 약산 스타일이었다. 두 방식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으나 영화 ‘암살’의 작전은 어쨌거나 백범과 약산이 합작해서 추진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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