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일제의 가혹한 수감현장으로 악명을 떨친 서대문형무소 인근 '옥바라지 골목'이 재개발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 현대사의 발자취가 남은 이 골목을 보존ㆍ재생해야 한다는 주장과 지나치게 노후된 여건 상 재개발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맞부딪히고 있다.종로구는 지난달 26일 무악동에 위치한 무악2주택재개발지구에 대한 관리처분계획을 인가했다. 이에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와 철거ㆍ주민 이주 절차 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서대문형무소를 마주보고 있는 무악2주택재개발지구에는 일명 '옥바라지 골목'이라고 불리는 곳도 포함돼 있다. 지난 1908년 서대문형무소(당시 경성감옥)가 들어서면서 수감자들을 뒷바라지하려는 가족들이 머물던 각종 여관 등이 자리한 곳이다. 1987년 서대문형무소가 안양으로 이전하고 나서는 낡고 어두운 골목으로 쇠퇴해진 상태다. 현재는 10여개 남짓한 여관ㆍ게스트하우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하지만 재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 골목이 가진 역사적 가치가 작지 않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시대에 이르기까지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ㆍ민주화운동가 등을 지키려는 가족들이 머물던 공간이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사례가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의 아내 고 이혜련(1884~1969) 여사다. 안창호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폭탄 투척 사건ㆍ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두 차례에 걸쳐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고, 이 여사는 그동안 옥바라지 골목에 머물렀다.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다른 독립운동가ㆍ민주화운동가의 가족ㆍ친지들도 이곳을 생활 근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태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차장(학예사)은 "옥바라지 골목에는 여관들이 많았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 등의 가족들이 수시로 머물렀다"고 말했다. 이같은 역사적 가치 때문에 종로구는 2011년 이곳을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골목길 해설사'의 해설코스로 포함시키기도 했다.김한울 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서대문형무소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경관관리와 보존이 필수"라며 재개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전면 재개발은 시가 강조하는 '도시재생' 기조와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관리처분계획 수립 과정에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1억원 가까이 높을 만큼 사업성이 부풀려져 있다"고도 덧붙였다.재개발 반대 주민이 늘어나고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지자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지난 2일 이들과 면담했고, 관리처분계획인가 고시도 미뤘다. 하지만 종로구는 재개발을 중단할만큼 역사적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장부상 옥바라지 골목 여관의 건축연도는 1960~1970년대로 보존가치는 높지 않은 편"이라면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면 2006년 재개발지구 지정 당시부터 논의가 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고 시설물 상태는 크게 열악해져 있어 재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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