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만리]벼락치는 초록비경, 이게 백색소음이구나

경북 울진 왕피천, 신선계곡으로 떠나는 오지 트레킹

간혹 산새들만 재잘댈 뿐, 걷는 발소리 외에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물소리만 지운다면 이런 적막이 따로 없다. 물길이 잠잠해지는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그면 짜릿한 감촉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생태계의 보고이자 '계곡 트래커'의 로망인 울진 왕피천을 걷는 맛은 이런것이다.

왕피천 트레킹은 끊어질 듯 이어지는 물소리를 친구 삼아 계곡길을 걸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길이 끊어지면 바위를 오르고 바윗길도 끊어지면 맑은 계곡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된다. 내가 가는 그곳이 바로 길이고 울창한 숲은 곧 휴식처다.

왕피천은 굽이굽이 계곡을 흘러 동해바다로 든다. 왕피천의 하류를 물들이는 낙조가 아름답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첨벙첨벙' 계곡물을 건너갑니다. 잠시 속세와의 끈을 내려놔야 할 때입니다. 걷는 발소리 외에는 조용하기 그지없습니다. 간혹 산새들만 재잘대며 지날 뿐입니다. 물소리만 지운다면 이런 적막이 따로 없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물소리를 친구 삼아 계곡길을 걸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길이 끊어지면 바위를 오르고 바윗길도 끊어지면 맑은 계곡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면 됩니다. 내가 가는 그곳이 바로 길이고 울창한 숲은 곧 휴식처입니다. 오지(奧地)로 불렸던 경북 울진 왕피천(王避川)과 계곡 이야기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오지로 불리는 두메산골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고산준령이 즐비한 탓에 질러가는 도로를 잇기 어려운 두메산골이 바로 울진이죠. 서울에서 달려도 5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그만큼 잘 보전된 자연과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울진의 자연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 '계곡 트래커'의 로망인 왕피천입니다. 야생의 느낌과 풍광이 성성하게 넘쳐나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계곡수, 원시림의 조화가 요술을 부린 듯한 신선계곡은 또 어떻습니까. 울진을 대표하는 불영계곡은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립니다. 깎아지른 듯한 단애와 기암괴석이 빚어내는 화려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울진의 계곡여정은 떠들썩한 길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번잡한 일상에 치여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을 때 그저 바람처럼 다녀와 볼 만한 곳입니다. 그 길 위에 서면 호젓한 숲길과 맑은 물빛 그리고 오지마을의 고요함이 지친 심신을 위로해 줍니다.

왕피천의 보물, 용소

 ◇물소리를 지웠다 적막이 몰려온다…왕피천에 위로를 받는다왕피천은 영양군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60.95㎞의 물길이다.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아 울진에서도 오지로 꼽힌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신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 왕피천이다. 계곡을 둘러싼 산자락 또한 공민왕이 기울어진 국운을 통곡하며 넘었다는 통고산(通高山ㆍ1067m)이다. '왕피천 굴구지마을' 표지판을 따라 아홉 고개를 넘어서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왕피천 트래킹의 들머리인 '굴구지'다.  왕피천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이다. 전체 면적만 102.84㎢(약 3116만평)로 북한산국립공원의 1.3배에 이른다. '수달' '산양' '참매' 등 멸종위기동물과 참좁쌀풀 등 희귀식물이 사는 그야말로 '자연의 보고'다.  계곡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굴구지마을에서 용소(4㎞)까지 바위와 물길을 타고 넘는 계곡 트래킹을 하거나 용소에서 속사마을(5㎞)까지 생태탐방로를 이용하면 된다. 이 두 가지(6시간 넘게 걸림)를 모두 즐길 수도 있다.  '상천동 관리초소'에서 왕피천 생태탐방에 나섰다. 초소에서 바라본 물줄기가 뱀처럼 굽이친다. 구절양장으로 넘쳐흐르는 야생의 계곡과 원시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사실 왕피천은 이름만큼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로 여름이면 반짝 북적이지만 여느 계곡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한적하다. 접근이 너무 어려운 탓일터. 사람 손을 덜 탄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풍광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왕피천은 삵, 매, 수달 등 희귀동물들의 낙원이다.

 좁은 숲길을 내려서면 바로 왕피천이다. 수정같이 맑은 물길을 따라 자갈밭과 모래톱 그리고 하얀 바위 위를 걷는 맛은 아주 각별하다. 첨벙첨벙 걷고 끊어진 길에서 바위를 딛고 이리저리 물을 건너다 보면 계곡 트래킹의 진정한 묘미를 맛볼 수 있다.  계곡엔 사람이 없다. 사박사박 걷는 발소리 외에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간혹 산새들만 재잘대며 지날 뿐이다. 물소리만 지운다면 이런 적막이 따로 없다.  30여분을 계곡을 오르며 장엄한 풍경과 마주한다. 왕피천이 숨겨둔 보물, 용소(龍沼)다. 여느 계곡에서 흔히 마주치는 용소와는 격이 다르다. 규모가 그랬고 모양새도 그랬다. 유백색의 절벽들이 겹겹이 시립한 사이로 검푸른 계곡물이 흐른다. 휘어지는 물길의 모양새는 그림에서나 보던 용을 빼닮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계곡이 깊어 더는 갈 수 없다. 바위를 탈 생각은 접는 게 좋다. 생태탐방로로 우회하는 게 안전하다. 용소 위는 학소대(鶴巢臺)다. 쉬면서 용소를 바라보면 또 다른 용의 모습이 보인다. 제일 앞의 바위는 용의 머리를 닮았고 그 뒤로 몸통에 해당되는 암벽들이 줄지어 서있다.  용소를 나와 생태탐방로로 들었다. 금강송이 빼곡한 숲길을 돌아서면 참나무 군락지다. 옛날 서면 왕피리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근남면 장터까지 오갔다. 탐방로 옆에는 '숯가마터'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생긴 돌무더기 속에 참나무를 넣고 숯을 만들었다. 먹고살 것이 궁하던 그 시절 산촌 마을 사람들은 숯을 구워 장에 내다 팔고 먹을거리를 구해 왔을 것이다.

오랜 세월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던 신선계곡이 최근 변했다. 걷기 어려운 바위 절벽과 경사가 심한 산길을 따라 나무데크 탐방로가 생겼다.

 계곡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나면 송이바위, 거북바위가 있는 협곡에 다다른다. 그저 바위 모양을 보고 지은 이름인데 기가 막히게 닮았다.  속사마을에서 돌아서는 길, 지난 길을 되짚어오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한다. 왕피천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의 맛이 전혀 다르다. 물길이 잠잠해지는 바위에 걸터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짜릿한 감촉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하늘은 파랗고, 적갈색 몸피의 금강송은 쭉쭉 뻗었다. 어스름 땅거미가 지려 한다. 어둠 속에 묻혀가는 왕피천은 낮의 번잡함을 털어낸다. ◇신선이 노닐다 간 신선계곡에 들면 내가 곧 신선 왕피천이 거친 계곡과 바위를 넘어가는 야생의 멋이라면 백암산(1004m) 자락 신선계곡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6㎞에 이르는 계곡길은 기기묘묘한 바위와 계곡수의 조화가 요술을 부린 듯하다. 웅장한 맛은 덜하나 골짜기 대부분이 암반으로 이뤄진 맑고 깨끗한 계곡이다.  산자락 깊숙이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흐르다 보니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아 신선들이나 노는 곳이라는 뜻으로 선시골, 신선골로 불렸다.  워낙 외진 곳이어서 대한제국 말기 의병장 신돌석이 몸을 숨길 수 있었고 계곡 상류 '독곡'이라는 곳에서는 1970년대 중반까지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며 살았다.

신선게곡의 용소

 오랜 세월 사람의 발길을 거부하던 신선계곡이 최근 변했다. 걷기 어려운 바위 절벽과 경사가 심한 산길을 따라 나무데크 탐방로가 생긴것. 물웅덩이를 건너고 바위를 넘어야 하는 계곡 트래킹으로만 가능했던 신선계곡이 이제는 누구나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편안한 길로 바뀐 것이다.  나무 탐방로는 지형에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깊은 계곡 속으로 이어진다. 편하게 걷지만 가파른 비탈에 놓인 나무데크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절경의 연속이다.  물소리와 가끔씩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만 가득할 뿐 탐방로에는 인공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고요와 여유만이 가득하다.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는 '매미소'를 지나면 곧 신선탕이다. 예로부터 신선이 목욕하며 놀았던 곳이라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신선탕은 아름다운 경치를 여러 사람이 즐긴다고 해서 '다락소(多樂沼)'라고도 불린다.

신선계곡 용소에서 바라보면 아찔한 높이에 출렁다리가 걸려있다.

재미있는 이름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늘을 가리는 수직절벽은 '참새눈물나기'다. 하늘을 나는 참새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험준한 곳이라는 뜻. '다람쥐한숨재기'는 암석이 수십 개의 층계를 이루고 있어 다람쥐도 한달음에 뛰어오르지 못하고 숨을 돌려야 오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었다. 신선계곡 역시 최고의 비경은 용소다. 옛날에 가뭄이 심할 때 돼지나 양의 머리를 잘라서 그 피를 소 주변에 뿌리면서 제사를 올려 비가 내리기를 빈 곳이라고 한다. 여기서 제사를 올리면 경상도 사투리로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고 하니 예사 장소는 아닌 듯하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 용소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맛도 좋지만 계곡을 잇는 출렁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울진=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가는 길= 서울에서 간다면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또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영주에서 36번 국도로 갈아타도 되지만 구불구불한 구간이 많다.

울진 지도

 ▲먹거리= 활어회와 홍게요리로 유명한 후포항의 '왕돌수산(054-788-4959)'은 믿고 찾을 만한 곳이다. '바다횟집(054-783-9966)'의 물회와 '망양정횟집(054-783-0430)'의 해물칼국수도 잘 알려져 있다.  

홍게찜

▲볼거리= 울진 북쪽의 죽변항에서 남쪽의 후포항까지 이어지는 7번 국도와 917번 지방도로를 타면 쪽빛 동해바다가 빚어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비구니 수행도량인 불영사와 불영사계곡, 죽변등대와 바닷가 절벽위에 자리한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도 아름답다. 안일왕산 정상에 있는 대왕금강송을 찾아가는 트래킹길이 새롭게 열렸다.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금강송을 찾아가는 길은 장관이다. 이 밖에도 울진해양스포츠센터에서는 스킨스쿠버 전문교육과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울진군요트협회가 상주하고 있는 후포항에서 요트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죽변등대에서 바라본 동해바다. 드라마 폭풍의 언덕 세트장인 집과 교회가 이국적이다.

울진 죽변항에서 후포항까지 7번국도를 따라가는 낭만 드라이브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진부 여행전문 조용준기자 jun2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