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규 사회문화부 지자체팀 부장
"무죄한 사람의 희생에 대한 책임이 어느 누가 없겠습니까. 진실규명은 보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3일 이석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예방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그 누구도 세월호 참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세월호 치유는 진실규명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1년 전 2014년 4월16일. 476명(잠정)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는 "배가 기울고 있어요"라는 첫 신고가 접수된 뒤 2시20분 동안 허둥대다 오전 11시18분 선수만 남긴 채 허망하게 침몰했다. 해경은 사고 해역에 도착했지만 배 안에 갇힌 승객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이 사고로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안산 단원고 2학년생 250명과 교사 11명, 일반인 43명 등 304명이 사망, 실종됐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2015년 4월16일. 대한민국은 평온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비켜난 세월호 피해 유가족들의 눈물은 더 많아지고, 회한ㆍ한숨ㆍ고통은 더 깊어가고 있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지난 2일 세월호 유가족들은 눈물의 삭발식을 가졌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위해서다. 이들은 해양수산부 시행령이 문제투성이라고 성토한다. 시행령에 근거한 특별조사위원회는 5개월이 지났지만 조직도, 예산도 없다.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공무원이 사무처 요직에 앉는다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 정부가 만든 시행령으로는 내 자식이 어떻게 죽었고, 왜 배가 침몰했는지를 절대 밝힐 수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지금 정부가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며 분개하고 있다. 이들은 즉각적인 선체 인양도 촉구하고 있다. 선체 인양만이 9명의 실종자를 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려보내고,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75명의 단원고 생존 학생과 그 가족들의 고통도 여전하다. 생존 학생 가족들은 늘어가는 치료비에 생계마저 막막하다. 정부는 생존 학생의 심리치료와 외상치료를 각각 5년, 1년으로 못 박았다. 생존 학생들의 피부 및 호흡기 질환 등 2차 치료는 정부지원도 안 된다. 의료보험 적용도 받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긴급생계비 지원대상에서 생존자 가족은 제외돼 있다. "대형 참사 생존자들은 고통이 평생가는 데 이런 터무니없는 지원책을 내놓고도 어떻게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할 수 있나요?" 생존 학생 부모들의 울분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 생존 학생들의 방황도 길어지고 있다.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은 희생자 유가족과 형제자매들이 먼저다. 이들을 만나는 것조차 죄스럽고 맘이 편치 않다. 이들이 거리를 떠도는 이유다. 일부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으면서 불안, 공포, 우울 등이 나타나는 '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으로 고통받고 있다. 세월호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지 1년이 지났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변한 것은 별로 없다. '생명 존중, 안전'을 강조하지만 정작 대형 사고는 잇따라 터지고 있다. 교육 현장도 구각 탈퇴를 외치지만, 수월성 교육ㆍ수동적 교육 등 구태는 여전하다. 무심히 흐르는 세월 속에 민민 갈등의 골은 더 패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세월호 추모 현수막이 찢겨져 나가고, 세월호 희생자를 조롱하는 악성 글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최근에는 배ㆍ보상금을 놓고 '죽은 자식을 상대로 유가족들이 돈장사를 한다'며 파렴치한으로 매도까지 당하고 있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고 경고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엄연한 비극으로 우리가 챙겨야 할 '역사'다. 정부는 세월호가 왜 침몰됐고, 단 한 명의 아이들도 구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또 생존자에 대한 지원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이 '별이 된 아이들'과 일반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오후 남미 4개국 순방길에 오른다고 한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까.이영규 사회문화부 지자체팀 부장 fortun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이영규 기자 fortune@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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