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남의 집 족보 찾기

전필수 증권부장

명절날, 차례를 지내고 나면 아버지는 낡은 족보책을 꺼내 드신다. 시조인 '득'자 '시'자 할아버지로부터 몇 대손이니, 중간에 어떤 할아버지가 무슨 벼슬을 했느니 하는 얘기에 어린 손자들이 귀 기울일 리 없지만 그렇게 집안의 역사 공부는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을 들었지만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건성으로 듣다 보니 이제는 내가 몇 대손인지, 무슨 공파 후손인지조차 헷갈린다. 아마 시험을 보면 초등학생 아들보다 낮은 점수로 낙제를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 집 족보의 기억도 흐릿해진 최근, 생각지도 않게 남의 집 족보를 공부하게 됐다. 지난주 후반, 증권가 메신저를 통해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사촌동생이 코스닥 상장사 E사의 사외이사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호씨가 부회장으로 있는 보성파워텍이 단기간 5배 이상 오른 전력이 있던 터라 투자자들의 관심도 증폭됐다. 하지만 E사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는 희성인 '반'씨에 이름에 '기'자가 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반 총장과 혈연을 입증할 길은 없었다. 이미 지난해 반 총장의 동생들은 다 공개된 터라 사촌 쪽에 포커스가 맞춰진 듯했다.  일부 발빠른 투자자들은 반 총장의 집안인 거제 반씨 족보를 조사해 올렸다. 반 총장의 항렬자인 터 기(基)자가 반씨 시조로부터 몇 대손인지, 별 규(奎)자와는 같은 흙 토(土) 변이라 같이 쓸 수 있다는 내용 등이 올라왔다. 덕분에 반씨의 기원 등 반 총장 집안의 역사뿐 아니라 '금목수화토' 순으로 이어지는 항렬의 순서까지 복기할 수 있었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E사 새 사외이사의 학력과 나이까지 상세히 조사한 내용도 전해졌다. 서울대 법대 졸업에 미국 인디애나대 경영학 석사 타이틀은 서울대 외교학과에 하버드 법학 석사인 반 총장과 인연이 깊을 것이라는 부연 설명이었다.  정말 사촌지간이 맞다면 반 총장의 할아버지(이미 고인이 되신 지 오래 됐겠지만)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망상을 하면서 다시 반씨 족보 조사한 것을 보니 시조가 중국에서 장원급제를 한 사람이었다.  '설마 사촌이 맞겠어?' 하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두 사람이 사촌 간이라고 확인이 됐다. 부질없는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데 과연 반씨 족보와 사촌의 학력까지 조사한 이는 본인 집안의 족보는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를 마치면 우리 집 족보도 한번 검색해 봐야겠다는 생각도….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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