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화 '성수'·고시촌 '신림'·벼룩시장 '황학' 변천사

성수동 수제화 공장 작업 광경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수제화 제작업체 500여개가 모여 있는 '성수동', 무허가 하숙집에서 출발해 수험생들의 고시촌을 이룬 '신림동', 옛 소리꾼의 집성촌에서 대표 벼룩시장이 된 '황학동'. 서울에서 특징적 장소로 꼽을 만한 이들 세 지역의 어제와 오늘이 담긴 보고서 3종이 발간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작년 한 해 동안 생활문화조사 대상으로 이들 지역을 선정, 역사·사회·경제·건축·도시민속·인류학 등 다방면의 분야로 접근해 각 지역들의 변천사를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발간 책자는 '성수동 : 장인, 천 번의 두들김', '신림동 : 대학동, 청운의 꿈을 품은 사람들', '황학동 : 고물에서 금맥 캐는 중고품시장'로 구성된다. 보고서는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성수동 관련 보고서에는 1967년 금강제화가 금호동으로 이전하며 발전된 성수동의 수제화 밀집지역과 구두 제작기술, 사회관계망 등이 심도있게 기록돼 있다. 협소한 공간에서 본드, 가죽냄새를 맡아가며 매일 15시간 이상을 작업하는 수제화 공장 기술자들의 일상과 작업과정을 밝히고, 저임금, 식사비 지원과 4대 보험 가입문제 등 40년 역사의 성수동 수제화 타운이 가지는 고질적인 노사문제에 대한 관리자와 기술자들의 채록도 담겨 있다. 또한 구두의 가죽을 제작하는 제갑기술자와 가죽의 창과 굽을 조립하는 저부기술자들의 도제식 견습과정을 살펴보고, 견습생에서 미싱사인 선생을 거쳐 최종 책임자가 되기까지 성수동 장인들이 탄생하는 과정과 에피소드도 소개하고 있다. 현재 성수동의 터줏대감 50~60대 남성 기술자들과 새롭게 등장한 20~30대 여성 디자이너들의 신·구 세대 마찰과 동종업계로서 공존 양상도 다루고 있다.

돼지막 하숙집 외부

행정, 사법, 외무고시 수험생들이 모여 고시촌을 형성했던 신림동은 ‘로스쿨 제도’ 도입, 사법고시 폐지 예정으로 지금은 많은 고시생들이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신림동 보고서에는 과거 이곳의 초기 고시원이 ‘돼지막’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무허가 하숙집에서 출발했던 사연부터 1970년대 초반 책상·의자·침구만 있는 1평가량의 방 1칸에 난방을 위해 연탄이 아닌 나무가 사용됐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명 풀옵션 원룸이 들어선 지금과는 판이하다. 이에 더해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대표 학사주점이 된 '녹두집'에서 이름이 유래된 녹두거리의 옛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학생운동에 협조하고 금서를 판매했다는 이유로 하나둘 씩 문을 닫게 된 신림동 녹두거리의 사회과학서점들과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서점 '그날이 오면'도 만나볼 수 있다.

1950년대 황학동 예인들

황학동의 중고 주방가구 수리 모습.

황학동 보고서를 통해서는 서울의 대표적 중고품시장이 발달하기 전 1940~1970년대 이곳에서 소리꾼들이 집성촌을 이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가무별감(歌舞別監)을 지낸 박춘재가 왕십리 광무극장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시작된 ‘예인들의 연습장, 황학동’의 30여 년간 생활상이 소개된다. 이후 주방·가구·기계·전자 제품 등이 폐품으로 들어와 상품으로 판매되는 벼룩시장이 된 사연과, 시장의 다양한 작업과정과 중고품의 순환과정이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또한 10년 전부터 황학동에 발길이 잦아들기 시작한 아프리카·동남아시아계 전문 중개상인들의 행적도 추적하고 있다. 2004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는 동대문운동장으로 터를 이전하지 못한 황학동의 비디오테이프·영상물 판매 노점상들은 영도교 다리 하나를 건너 숭인동 동묘 인근에서 벼룩시장을 계승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명성이 줄어든 황학동이 추억 속 장소로 남을 것인지 서민들의 생활밀착형 시장으로 존속해야할 곳인지 의견들을 촉구하고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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