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최근 지인들과의 식사약속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던 중에 옆 테이블에 있는 젊은이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한 친구가 새로 뽑은 지 얼마 안되는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뒤차의 가벼운 추돌로 범퍼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는데 다른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조언을 하고 있었다. 보험처리를 하면 범퍼를 통째로 교체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겪은 자동차 사고처리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생 보험을 천직으로 알고 일해 온 필자로서는 범퍼에 생긴 작은 흠집 때문에 범퍼를 통째로 교체할 수 있다는 사고(思考)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또 실제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이 놀랍고도 안타까웠다. 사회전반에 만연한 자동차 과잉수리 현상은 자동차보험의 보상구조상 사고 피해차주가 자비(自費)를 들이지 않고서도 차량을 수리할 수 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보험회사가 피해차주를 대신해서 수리비 전액을 지급해 주기 때문에 피해차주로서는 사고 발생을 기회삼아 가능하다면 새 부품으로 깔끔하게 교체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게 된다. 공짜를 찾고 공로 없는 대가를 좋아하는 인간의 '간탐어물(姦貪於物)'의 심리가 작용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여지가 높아지는 것이다. 보험회사들은 그동안 자체적 수리기준 마련 및 수리비 지급심사 강화 등을 통해 과잉수리 근절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보험회사의 노력 여부와는 별개로 동일차량, 동일파손에 대해서도 소비자와 정비업체의 성향에 따라 수리방법과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차량수리와 관련한 표준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과잉수리에 대한 통제가 쉽지 않고 그 폐해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물론 사고발생 시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는 것이 보험의 역할이다. 하지만 경미한 범퍼 손상임에도 범퍼를 통째로 교체하는 등 실제 발생한 손해 이상의 이득을 보는 것은 손해보험의 기본 원칙인 실손보상의 원칙에 어긋난다. 따라서 합리적 기준 마련을 통해 실제 손해 이상의 과도한 수리를 통제하는 것이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으로 인한 보험료 상승 요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과잉수리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차량 수리기준을 표준화하는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을 통해 선량한 보험가입자를 보호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보상체계를 보다 선진화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충분한 연구능력 및 공정성ㆍ객관성을 갖춘 전문기관의 연구용역을 통해 보험소비자, 정비업계, 보험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명확한 차량수리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 관련 당사자들이 객관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실제로 그 가이드라인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련된 차량수리 가이드라인이 예외없이 준수될 수 있도록 그 적용을 규범화시키는 방안도 병행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자동차보험은 1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2010년에 1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사상 두 번째로 큰 적자 규모다. 영업적자는 최근 3년 새 2012년 5749억원에서 2013년 9418억원, 지난해 1조원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보험사들이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그 중심에는 경미사고 과잉수리에 따른 보험금 누수가 자리를 잡고 있다. 경미한 사고에 대한 수리기준을 마련해 보험금 누수를 방지하고 지급기준의 명확화를 통해 손해율 안정화에 힘써야 한다. 범퍼에 난 작은 긁힘 때문에 범퍼를 통째로 갈아버리는 사회경제적 낭비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가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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